하느님,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이불이 얇은 자의 시린 마음을 잊지 않게 하시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을 고마워하게 하소서. 겨울에 살게 하소서. 여름의 열기 후에 낙엽으로 날리는 한정 없는 미련을 잠재우시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당신의 긴 뜻을 알게 하소서. 아침에는 비가 오다 낮에는 눈발이 몰아치다 하더니 하루 종일 가랑눈 오락가락합니다. 겨울이 되었습니다. 마당에 땔나무를 가지러 나가려다가 목도리를 두르고 목장갑을 찾아 낍니다. 추운 계절이 찾아오면 몸도 마음도 긴장하게 되는데, 마종기 시인은 「겨울기도 1」이라는 시에서 "추워하며 살게 하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나만 추워 떠는 게 아니라 이불이 얇은 많은 사람들은 다들 시린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걸 생각하라는 뜻이겠지요. 어떻게 따뜻하게 지낼까 하는 생각만을 하지 말고 가난한 채로 겨울을 맞아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추운 삶을 받아드리라는 뜻이겠지요. 더 따듯한 곳에 살지 못하는 걸 불평하지 말고 "돌아갈 수 있는 몇 평의 방"이 있다는 걸 고마워하며 살라는 말씀이겠지요. 밖에는 눈이 쌓이는데 오늘 하루도 편히 잠들 수 있게 하는 하신 "당신의 긴 뜻"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라는 말씀이겠지요. 우리 인생의 여러 계절을 주관하시는 그분은 우리에게 겨울을 보내 늘 조급해하고 동동거리며 사는 우리가 무얼 더 깨달아야 한다고 하신 걸까요? 도종환 시인
지난 주(11월 25일) 광주고법 형사1부(재판장 이한주)는 이른바 '오송회(五松會)' 라는 이름의 이적단체를 결성,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고 불온 유인물을 탐독한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은 조성용(71)씨 등 관련자 9명에 대한 재심 공판에서 원심을 깨고 전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면서 이례적으로 "법원에서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 느꼈을 좌절감과 사법부에 대한 원망, 억울한 옥살이로 인한 심적 고통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동안의 고통에 대해 법원을 대신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재판부는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오송회 사건은 1982년 전두환 정권 시절 발생한 대표적인 공안조작사건입니다. 그 사건은 버스에서 발견된 오장환 시집 『병든 서울』의 필사본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이 시집은 이광웅 시인이 신석정 시인 집에 있는『병든 서울』을 빌려와 필사한 것으로 군산 제일고 동료교사인 박정석 선생이 복사해 갖고 있다가 한 제자가 빌려가지고 다니다 버스에 두고 내렸다고 합니다. 버스 안내양이 이 유실물을 경찰에 갖다 주었는데 경찰이 전북대 철학과 모 교수에게 자문을 구하자, 그 교수는 '인민의 이름으로 씩씩한 새 나라를 세우려 힘쓰는 이들' 등의 구절을 지적하며, 지식인 고정간첩이 복사해 뿌린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경찰은 큰 기대를 갖고 내사를 시작했고 시집 겉장을 싼 종이가 인문계고등학교 국어 시험문제인 것에 주목하여 석 달 이상을 추적한 끝에, 이광웅 시인 등 독서클럽을 꾸린 교사들을 구속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탄원서에 의하면 그들은 구속된 상태에서 북한과의 연계, 광주항쟁의 중심 인물인 윤한봉과의 관계 등을 추궁 받으며 통닭구이고문,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처음에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나중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매달렸다"고 말했습니다. 그해 4월 19일 이들 중 몇 명이 학교 뒷산에서 4ㆍ19가 기념일에서 제외된 것을 한탄하며 막걸리를 마시고 조출한 '4ㆍ19 기념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 때 5ㆍ18 이야기가 나왔고 희생자를 위해 잠시 묵념을 했는데, 막걸리와 묵념이 '5ㆍ18 위령제'가 됐고, 그곳이 마침 소나무 다섯 그루가 있던 곳이었다는 이유로 '오송회(五松會)'가 된 것을 기소되면서 알게 됐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오송회라는 반국가단체 이름도 당사자들이 아닌 경찰이 만들어준 것입니다. 『병든 서울』이란 시집과 거기 실려 있는 같은 제목의 시는 해방 직후의 우리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입니다. 해방 직후의 현실을 바라보는 주관적 심정이 가장 강렬하게 표출되어 있으면서 그것이 자기반성에서 출발한 시적 진정성 이라는 점 때문에 해방기념조선문학상 최종심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입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병기, 정지용, 임화, 조벽암, 권환, 김기림은 『병든 서울』이 '과도기 시의 한 달성'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습니다. 경찰에서 문제 삼은 "우리 모든 인민의 이름으로 / 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 /(.....) 인민의 힘으로 하나 되는 새 나라"는 단순한 공산주의 선전문구가 아닙니다. 이 시를 쓴 것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29일이며 여기서 이야기하는 새 나라는 근대국가 건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장환이 월북시인이라는 점 때문에 당시 경찰은 더 의심을 했을 법도 합니다. 당시 오장환 시인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잘 운영되어 두 개의 정부가 아닌 통일된 나라가 건설되기를 바라는 정치적 입장을 가졌고 이를 위한 문화 활동을 하다, 남한만이라도 선거를 통해 단독정부를 세우려는 이들에 의해 모진 테러를 당했습니다. 생존이 절박해진 상황에서 테러를 피하고 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을 찾아 간 곳이 남포 적십자 병원이었고, 거기서 치료를 받다가 모스크바 볼킨 병원으로 다시 옮겨갔고 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에 병사합니다. 당사자들은 불가피한 탈출이었다고 하고 우리는 그것을 월북이라고 합니다. 오장환 시인은 북한 문학사에서 단 한 줄도 기록해 주지 않는 시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월북시인이라 하여 시집을 소지하고 있는 것조차 문제가 되는 시대를 산 것입니다. 오직 이념의 잣대만으로 사람을 가르고 고문하고 감옥살이를 시키고 사회에서 매장하는 야만의 시대가 언제까지 이어져야 합니까? 재판부는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다."고 했지만 사회 전체가 그런 보편적 정의를 향해 가야 합니다. 당시 주모자로 몰렸던 이광웅 시인은 7년 징역살이 후 복직했다가 다시 전교조관련으로 해직 된 후 맘 고생 몸 고생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떴습니다. 참으로 순하고 조용하고 나직나직했던 이광웅 시인의 얼굴과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학교 때부터 수재였고 착하고 진실했던 그는 허리에 도끼날이 박힌 소나무가 되어 무참히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당신은 무죄야!" 하는 소리를 구천에서도 들었을까요? 도종환 시인
그대 거기 있다고 자기 스스로를 하찮게 생각하지 마세요. 개울물은 거기 있음으로 해서 강물의 핏줄이 됩니다. 그대도 거기 있음으로 해서 바다같이 크고 웅장한 것의 실핏줄을 이루고 빈틈없는 그물코가 됩니다. 그대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지 못해서,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표시가 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물코는 한 곳만 끊겨 나가도 그리로 모든 것이 빠져 달아납니다.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크고 완전한 것이 존재하는 겁니다. 거대한 바닷물도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서 이룬 것입니다. 여윈 개울물 한줄기야말로 강물의 근원이요 모태인 것입니다. 그대도 그처럼 근원이요 출발입니다. 그대 늘 거기서 시작하세요. 그대는 크고 거대한 것의 시작입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힘겨워하지 마세요. 과꽃도 해바라기도 거기 그렇게 있지만 초라한 뜨락을 꽃밭으로 바꾸고 퇴락한 돌담을 정겨운 공간으로 바꿉니다. 그대가 거기 있는 것처럼 소박한 모습으로 서서 자기들이 있는 곳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는 이들이 세상에는 참으로 많습니다. 그들이 이 세상을 꽃밭으로 바꾸는 것처럼 그대도 그렇게 꽃으로 있습니다. 그대 힘겨워하지 마세요. 그대의 모습이 다른 이에게 힘이 되고 있습니다. 힘겨움을 이기지 않고 아름답게 거듭나는 것은 없습니다. 작은 꽃 한 송이도 땡볕과 어둠과 비바람을 똑같이 견딥니다. 마을 어귀의 팽나무와 느티나무가 견디는 비와 바람을 채송화도 분꽃도 똑같이 겪으며 꽃을 피웁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외로워하지 마세요. 살아 있는 것들 중에 외롭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들판의 미루나무는 늘 들판 한 가운데서 외롭고 산비탈의 백양나무는 산비탈에서 외롭습니다. 노루는 노루대로 제 동굴에서 외롭게 밤을 지새고 다람쥐는 다람쥐대로 외롭게 잠을 청합니다. 여럿이 어울려 흔들리는 풀들도 다 저 혼자씩은 외롭습니다. 제 목숨과 함께 쓸쓸합니다. 모두들 혼자 이 세상에 나와 혼자 먼길을 갑니다. 가장 힘들고 가장 어려울 때도 혼자 저 스스로를 다독이고 혼자 결정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외로운 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외롭습니다. 지금 그대 곁에 있는 사람도 그대만큼 외롭습니다. 그대가 거기 있어서 외로운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외로운 존재인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그대 거기 있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나리꽃은 거기 있어도 여름이 오면 얼마나 아름답게 꽃핍니까. 잡풀 우거지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주홍빛 꽃 한 송이 거기 있음으로 해서 사람들이 비탈지고 그늘진 그곳을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야 닿을 수 있는 먼 곳에 가 있다 해도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궁벽지고 험한 그곳에 사람 사는 정겨움이 감돈다면 그대는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겨우 이런 곳에 있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거기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뻐하고 대견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그대 거기 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낮은 곳에 있어도 구절초는 가을이 되면 얼마나 곱게 핍니까. 외진 골짜기나 산비탈에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어도 함께 모여 이룬 가을 풍경이 얼마나 사람들을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만듭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며, 언제까지 이렇게 비천한 자리에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든든한 자태로 서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찬바람 부는 낮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지 마세요. 가장 훌륭한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힘든 일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가장 당당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그대로 인하여 그대가 있는 곳이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성벽의 맨 밑에 있는 돌은 얼굴을 찡그리지 않습니다. 그 자체가 성곽이기 때문입니다.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미워하지 마세요. 외딴 늪도 자기 스스로를 깊이 사랑합니다. 그대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숲 속에 늪 하나가 거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기뻐하며 목숨을 이어가는지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잠자리, 나비, 반딧불이들이 기뻐하고 얼마나 많은 생명의 환호성이 늪 근처에서 울려나오는지 아십니까. 지나가던 철새들이 내려와 날개를 쉬며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아십니까. 그대 거기 있다고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학대하지 마세요. 그대는 좋은 점을 참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사랑하세요. 아직도 당신이 베풀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대가 능력이 부족해서 거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것입니다. 언젠가 그 일이 당신의 생애에 자부심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
십일월도 하순 해 지고 날 점점 어두워질 때 비탈에 선 나무들은 스산하다 그러나 잃을 것 다 잃고 버릴 것 다 버린 나무들이 맨몸으로 허공에 그리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건 이 무렵이다 거기다 철 이른 눈이라도 내려 허리 휘어진 나무들의 모습은 숙연하다 이제 거둘 건 겨자씨만큼도 없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는 건 이 때다 알몸으로 맞서는 처절한 날들의 시작이 서늘하고 탁 트인 그림이 되는 건 십일월 하순, 이맘때쯤이면 잎이란 잎은 다 집니다. 나뭇잎을 다 잃고 비탈에 선 나무들도 우리도 마음 스산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앉아 바라보면 비탈과 능선에 선 나무들이 이때 오히려 더 아름답습니다. 잎이 다 지고나면 나무들은 알몸의 빈 가지만 남게 되는데 그 세세한 잔가지들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며 그리는 그림이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입니다. 아니 "사방팔방 수묵화 아닌 곳 없"습니다. 이제 겨울이 오고 찬바람 불고 눈발이 몰아칠 터인데, 알몸으로 맞서야 하는 처절한 날들만이 남았는데 그 모습이 그림입니다. 가진 것 다 잃고 오직 견딜 일만 남았는데도 그것이 탁 트인 그림이 되는 십일월 하순의 풍경을 보며 인생의 깨달음 하나를 얻습니다. 우리의 처절한 삶을 어떻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바꾸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도종환 시인
어려서 형들에게 배운 민화투는 재미있었습니다. 아, 민화투 말고 충청도 지역에서는 뻥이나 육백이라는 화투놀이도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숫자를 더하고 빼고 계산하는 일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걸 배우는데다가 이기고 지는 일이 보태져 있어서 승부욕 같은 걸 갖게 해주었습니다. 게다가 반복되는 긴장과 이완의 경험도 할 수 있었고 이기는 자의 태도와 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담요를 접어 깔고 화투로 재수를 떼보는 일도 하였는데 그걸 배우는 재미도 쏠쏠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습니다. 고스톱이나 결국 도박이 되어버리는 돈내기화투로는 가지 못하였습니다. 당장 손에 지닌 게 없을 뿐만 아니라 잔돈이 있다 하더라도 지니고 있는 돈이 없어서 뒷심이 없었습니다. 뒷심이 없으면 지를 수 없고 그러면 오기와 허세만으로 계속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그것도 한두 번은 통하지만 결국은 가진 것 다 날리고 뒷자리로 물러나게 됩니다. 젊어서 "고스톱 칠 줄 모르는 놈은 사위로 삼지 말라."는 말을 듣고 부잣집 딸 만나 장가가긴 틀렸구나 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펀드와 주식 모르는 사람은 사람 축에 끼지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든 오랜만에 친척이나 형제들이 모이는 자리든 그쪽으로 화제가 옮겨가면 나는 아는 게 없어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 찾을 일이 있어 은행에 가면 창구직원들이 리플렛을 보여주며 새로운 상품에 투자하라고 권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좋은 땅 나왔는데 사지 않겠느냐?'고 전화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아파트 가격은 엄청나게 치솟아 부자들은 입이 벌어지고 서민들은 자기집값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동안, 전화나 인터넷으로 돈 갖다 쓰라는 광고가 수없이 쏟아져 나오고, 타짜라는 드라마가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여기저기 돈이 넘쳐나는 듯한 분위기, 돈을 대출받아 투자하면 금방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들뜬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금융당국도 그랬고 국가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거품은 반드시 꺼지기 마련입니다. 건전한 예금과 자산 없이 부채 위에서 키워온 거품인데 어떻게 꺼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금융자본이 마음대로 활개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고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만 쳐다보고 있다가 쫄딱 망하는 사람은 더 많아지는 사회가 된 것입니다. 대박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쪽박 차는 사람도 엄청나게 생겨나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대부분 '나에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번만은 다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자빠지는 것이 도박판의 생리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를 카지노식으로 끌고 가는 사회와 그런 사회에 사는 사람들의 불행입니다. 돈 놓고 돈 먹기식 카지노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망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미국발 금융위기가 몇 년의 시장불안과 실물경제의 막대한 피해와 기업도산과 가계파탄을 초래한 뒤에 서서히 저점을 찍으며 조정되고 재편되는 과정을 겪겠지만, 또다시 거품을 만들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주기적인 위기를 몰고 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게 자본의 생리이고 카지노 자본주의의 생리입니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웃고 떠들며 묵내기화투를 치는 사람냄새 나는 겨울밤은 이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