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산행 어수선한 연말이 지나고 또 바쁘게 새해가 왔습니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연말연시는 차분하게 한 해를 마무리 짓고 새해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보다는 대개 바쁘게 보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연말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기 위한 각종 송년 모임으로 분주하고, 새해 첫날부터는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인사를 하기 위해 바쁩니다. 신정 연휴를 보내면서 조용히 새로운 다짐을 해 보거나 새해 계획을 세울 시간도 없이 쫓기듯 한 해를 시작합니다. 연초에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산행을 했습니다. 겨울 산길은 언제 찾아도 좋습니다. 도심 속에서 쫓기는 생활, 무겁고 분주한 생각의 실타래들을 털고 빈 마음으로 산을 대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겨울 골짝을 얼지 않고 흐르는 물소리의 신선함이 좋고 참나무 마른 잎새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제대로 들려서 좋습니다. 다른 계절의 산행 때와는 다르게 사람이 많지 않아서 더욱 좋습니다. 걸음이 여유로워지고 따라서 마음도 더욱 여유가 생깁니다. 그런데 사람의 몸은 허약하기 짝이 없고 마음 또한 변하기 쉬운 것이어서 몇 시간씩 걷다 보면 자연 발걸음도 무겁고 마음도 지치게 됩니다. 그럴 때면 올 한 해는 또 얼마나 힘들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산뜻한 걸음,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해도 걷다 보면 지치는 것입니다. 내가 선택한 길인데도 원망과 짜증이 생기고 그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생깁니다. 등에 진 짐도 무거워지고 이 짐을 벗어 다른 사람에게 주고 싶어 주저앉았는데 그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원래 사람의 수명은 서른 살이었다고 합니다. 하느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면서 다른 동물들과 똑같이 서른 살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나귀가 달려와 "하느님, 그렇게 오래 살면 저는 허리가 휘도록 일을 해야 합니다. 줄여 주십시오." 해서 당나귀의 수명을 십이 년 깎아 십팔 년이 되게 했답니다. 그랬더니 개가 달려와 "저는 그렇게 오래 뛰어다닐 수가 없으니 저도 줄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해서 십팔 년을 줄여 십이 년이 되게 하였답니다. 이번에는 원숭이가 달려와 "저는 사람들을 웃기고 재롱이나 떨면서 사는데 늙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깎아 주십시오." 하여 십 년으로 줄여 주었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느님께 찾아와 "삼십 년은 너무 짧습니다." 하고 화를 내기에 당나귀와 개, 원숭이에게서 줄인 것을 모두 합쳐 사람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은 팔십이 되었는데, 그 덕택에 사람은 사는 동안 당나귀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하고, 개처럼 헐레벌떡 뛰어다녀야 하며, 원숭이처럼 먹을 것을 던져 주는 사람 앞에서 재롱을 떨고 바보짓을 하며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독일에서 전해 오는 이 이야기를 생각하며 올 한 해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짐과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나날들과 밥벌이를 해야 할 시간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고, 차곡차곡 쌓이는 일의 성과 속에서 살아 있는 의미를 확인하며, 그것으로 생활의 양식을 벌어 간다면 우리 인생은 그렇게 헛된 노고로 이어지는 삶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마음을 다독이고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가는 거지요. 저 산 저 고개 내가 넘어야 할 곳을 잃지 않으면 됩니다. 올 한 해도 앞으로 나의 인생도 그렇게 걸어가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늘 제일 힘들지만, 그 고개를 넘었을 때의 기쁨 또한 고통 때문에 더욱 커지는 것이니 그렇게 묵묵히 가자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고갯마루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산기슭마다 아름다운 눈으로 덮인 주흘산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비경이었습니다. 저 아름다운 모습을 제대로 못보고 앞만 보고 왔구나. 가다가 가끔씩 뒤돌아보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올해도 또 앞만 보고 걷는 건 아닐는지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앞도 보고 뒤도 보며 여유 있게 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도종환 시인
집 짓는 원칙과 삶의 원칙 황룡사탑 이후 우리 민족의 건축술과 오늘의 기술이 조화를 이룬 대작이라고 하는 보탑사 목탑을 만든 신영훈 선생은 목탑의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 곳 중의 하나로 처마를 듭니다. "보탑사 탑 처마는 1, 2, 3층이 중첩되고 있는 장중한 아름다움을 보인다. 가볍지 않은 중압감으로 무게를 느끼게 하면서도 날렵하게 처리된 선에서 비상하는 능동감이 감지된다. 처마는 정적이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날개짓하는 생동감이 넘친다." 이렇게 자평합니다. 처마 곡선은 서까래라는 점과 점을 평고대라는 궤적이 선을 이루면서 완성한 결과로 얻어진다고 합니다. 이 선의 유연성을 위해 통서까래도 궤적의 위치에 다라 서로 다른 각도로 치목됩니다. 중국 일본에서는 이 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 처마를 수평선으로 형성하는 단순한 직선의 수준에서 만족한다고 합니다. 서양식 안목으로 좌우로 들린 처마곡선을 1차원의 선이라 부른다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또 하나의 곡선의 존재를 가지고 있어 2차원의 입면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입니다. 신영훈 선생의 글을 읽으며 곧게 다듬은 목재를 가지고 만들어 내는 이 유연성, 장중한 아름다움과 화려한 생동감, 가볍지 않은 무게와 비상하는 능동감 이런 우리 건축 기술에 찬탄을 금치 못합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는 것은 처마든, 심초석 놓을 자리를 잡을 때든, 상륜부를 완성할 때든,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항상 최선의 선택이란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못 하나 박지 않고 목탑을 쌓아 올리며, 시멘트를 사용하지 않고 기초를 다지며, 용접을 하지 않고 상륜부 쇠막대를 끼워 올리며 최고의 목탑을 만들었습니다. 쉽게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탑 하나를 만들어도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켰기 때문에 천 년 이상을 가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재료에 있어서 훨씬 더 강하다고 하는 철근과 시멘트와 철제빔을 사용한 현대 건축물들이 수 십 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헐고 다시 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데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건축물 자체로서도 볼품이 없고 내구성도 강하지 못한 집들을 짓고 살아 왔습니다. 삶도 그랬고 역사도 그랬습니다. 어려우면 타협하고 불리하면 잔꾀를 부렸습니다. 이익과 불이익을 수없이 재면서 행동했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원칙과 근본을 버렸습니다. 목적을 이루고 나면 바르지 않았던 과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수사를 동원했고 그럴싸한 변명으로 합리화했습니다. 이익을 따라 수없이 모이고 흩어지는 일을 되풀이 해 왔으나 솔직하게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사람은 볼 수 없었습니다. 가볍게 처신하고 비굴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늘어났으며 깊이 있는 행동을 하는 존경할 만한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어 갔습니다. 장인정신도 선비정신도 자꾸 옛말이 되어 가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새해를 맞으며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잡보장경>을 읽습니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교만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한 삶,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겸손한 삶, 역경이 닥쳤을 때든 그것을 극복했을 때든 늘 평상심으로 살아가는 삶, 유연하되 원칙을 잃지 않는 삶, 어려울 때마다 근본으로 돌아가 거기서 다시 시작하는 삶, 올해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원합니다. /도종환 시인
출발점 산악인들의 말 중에 '겨울산에서 길을 잃으면 왔던 길로 되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확실하게 자신을 보존하고 재도전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은 출발점으로 가서 다시 시작하는 일입니다. '초발심'――처음 가졌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안 보이던 길이 보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이 생기는 것입니다. 눈 덮인 곳에서 앞에 보이는 나무를 향해 똑바로 걸어간 뒤에 걸어온 발자국을 한번 뒤돌아보세요. 똑바로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걸어갔어도 발자국은 이리 삐뚤 저리 삐뚤 눈 위에 박혀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 사는 삶도 그러합니다. 아무리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살아왔다 해도 지나고 나면 잘못과 실수의 흔적이 우리가 걸어온 길과 늘 함께 남아 있기 마련입니다. 요즈음처럼 사는 일이 모두들 바쁘고 시간에 쫓기게 마련인 나날의 삶 속에서는 자신과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되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가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일수록 뒤돌아보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루 생활이 끝나는 때, 한 주일이나 한 달이 끝나는 때에는 그 동안 지나온 자신의 삶을 조용히 뒤돌아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날들과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재충전의 여백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한 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더욱이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일의 가닥이 잡히지 않는 때일수록 처음의 자세로 돌아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일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 그때의 자세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다시 일의 실마리가 잡히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다시 채찍질 할 수 있는 용기도 생기고, 더 채워야 할 것과 덜어 내야 할 것들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 이 자리까지 오는 동안 불필요하게 쌓인 것, 거리가 멀어지고 공백이 생긴 부분, 관심을 갖지 못해 먼지가 쌓인 곳, 때가 끼고 더럽혀진 많은 것들도 눈에 띄게 됩니다. 그런 것들을 간추리고 다독이며 다시 가뿐한 마음으로 새로운 걸음을 뗄 수 있게 됩니다. 새롭게 시작하세요.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세요. 그곳에 본래의 내 모습――참 나(眞我)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종환 시인
www.chorok.org남들도 우리처럼 사랑했을까요 연일 들려오는 소식은 불길하여 산중에 앉아있어도 戰火속에 앉아 있는 것 같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어둠을 밝혔던 촛불은 흔들리고 설마 했던 일들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 모두에게 힘겨운 시간이 되리라 생각하며 400 여년 전, 남편을 사별한 후 아내가 쓴 소중한 편지 한통을 올려봅니다. 민간에서 처음 사용한 우리말 편지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이며 제게는 우리말을 사랑하게 된 연유가 되었고 거리에서 서름들을 견디게한 글이었기에 문득 옮겨 놓습니다. Ⅰ 원이 아바님께 병슐 뉴월 초하룻날 집에서 자내 샹해 날드려 닐오되 둘히 머리 셰도록 사다가 함께 죽자 하시더니 엇디하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노 날하고 자식하며 뉘긔 걸하야 엇디하야 살라하야 다 더디고 자내 몬져 가시는고 자내 날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며 나는 자내 향해 마음을 엇디 가지런고 매양 자내드려 내 닐오되 한데 누어 새기보소 남도 우리같이 서로 어엿비 녀겨 사랑호리 남도 우리 같은가 하야 자내드러 닐렀더니 엇디 그런 일을 생각지 아녀 나를 버리고 몬져 가시난고 자내 여히고 아무려 내 살 셰 업스니 수이 자내한테 가고져 하니 날 데려가소 자내 향해 마음을 차승(此乘)니 찾즐리 업스니 아마래 션운 뜻이 가이 업스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내를 그려 살려뇨 하노 이따 이 내 유무(遺墨) 보시고 내 꿈에 자셰 와 니르소 내 꿈에 이 보신 말 자세 듣고져 하야 이리 써녔네 자셰 보시고 날드려 니르소 자내 내 밴 자식 나거든 보고 사뢸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를 아바 하라 하시논고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라 하늘아래 또 이실가 자내는 한갓 그리 가 겨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 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세히 이르소서.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자네 항상 날더러 이르되 둘이 머리 세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자네 먼저가시는가 나하고 자식하고 누구를 의지하여 어찌살라하고 다 버리고 자네 먼저 가시는가. 자네 날 향해 마음을 어찌 가졌으며 나는 자네 향해 마음을 어찌가졌던가 매양 자네더러 내 이르되 함께 누워 새겨본 것은 남들도 우리같이 서로 어여삐여겨 사랑할까 남들도 우리 같은가하여 자네더러 일렀는데 어찌 그런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 자네 여히고 아무래도 내 살수 없으니 수이 자네한데 가고자하니 날 데려가소서. 자네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찾을 수 없으니 이 마음 설운 뜻이 가이없으니 이 내 안밖은 어데다가 두고 자식 데리고 자네를 그리며 살려하는가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이르소서 내 꿈에 이 보신말 자세히 듣고져 하여 이리 썼으니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이르소서 자네 내 밴 자식 낳거든 보고 사륄 일하고 그리 가시지 밴 자식 놓거든 누구를 아바 하라 하시는가 아무리 한들 내 안 같을까 이런 텬디(天地)같은 한(恨)이 하늘아래 또 있을까 자내는 한갓 그리 가계실 뿐이거니와 아무려 한들 내 안 같이 셜울가 그지그지 끝이 업서 다 못 써 대강만 적네 이 유무(遺墨) 자셰 보시고 내 꿈에 자셰히 뵈고 자셰 니르소 나는 다만 자내 보려 믿고 있뇌 이따 몰래 뵈쇼셔 하 그지 그지 업서 이만 적소이다 Ⅱ 두번째 글 역시 같은 무덤에서 나온 글로 죽은이의 형이 동생을 보내며 쓴 만시로 애트한 형제애가 묻어나는 글입니다. 너와 함께 어버이를 모신지가 이제 서른 한 해가 되었구나 이렇게 갑자기 네가 세상을 떠나다니 어찌 이리 급하게 간단 말인가 땅을 치니 그저 망망하기만 하고 하늘에 호소해도 대답이 없다 외롭게 나만 홀로 남겨두고 너는 저 세상으로 가서 누구와 벗할는지 네가 남기고 간 어린 자식은 내가 살아 있으니 보살필 수 있겠지 내 바라는 것은 어서 하늘로 오르는 것 전생 현생 후생의 삼생은 어찌 빠르지 않겠는가 또한 내 바라는 것은 부모님이 만수하시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네 형이 정신없이 곡하며 쓴다.
따뜻한 상징 앉은뱅이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데 어깨가 시려옵니다. 창문 쪽에서 한기가 한 호흡씩 밀려오는 게 보입니다. 커튼을 쳤지만 그것만으로 냉기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기온이 점점 내려가고 있는 게 방안에서도 느껴집니다. 난로에 불을 피울까 하다가 오늘은 이대로 견뎌보자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큰 추위가 몰려올 걸 생각하니 땔나무를 좀 아껴야겠습니다. 오늘 같은 겨울밤, 시린 어깨를 모포로 감싸며 견뎌야 할 시련의 날들에 대해 생각하며 깊게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어떤 밤에 혼자 깨어 있다 보면 이 땅의 사람들이 지금 따뜻하게 그것보다는, 그들이 그리워하는 따뜻하게 그것만큼씩 춥게 잠들어 있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발이 시리기 때문에 깊게 잠들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눈물겨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고 그들의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그렇게 밤을 건너가고 싶다 가장 따뜻한 상징, 하이얀 쌀 두어 됫박이 우리에겐 아직도 가장 따뜻한 상징이다 정진규 시인도「따뜻한 상징」이란 시에서 춥게 잠들어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이렇게 눈물겨워 합니다. 발이 시려서 깊게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꿈에도 소름이 조금씩 돋고 있는 것이 보이고 추운 혈관들도 보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부엌 항아리 속에서는 길어다 놓은 이 땅의 물들이 조금씩 살얼음이 잡히고 있는" 겨울밤 "그들의 문전마다 쌀 두어 됫박쯤씩 말없이 남몰래 팔아다 놓으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고 싶다" 고 합니다. 나도 춥고 배고프던 소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집집마다 쌀 두어 됫박씩 걷어 마루에 놓고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루에 놓여 있던 하이얀 쌀자루를 생각합니다. 내게 그 쌀자루는 언제나 따뜻한 상징입니다. "요즈음 추위는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에겐 오늘도 역시 따뜻한 상징이 필요합니다. 그 상징은 진정으로 아픔을 나누려는 따뜻한 마음이 만들어 내는 상징입니다. /도종환 시인
http://www.oisoo.co.kr/oisoobbs/bbsVC.asp?TotPage=1689&t_class=0&sub_class=&nPage=3&SeqNo=185078&NoticeIDX=&gopage=3&rowcnt=20&src_key=Title&src_str= 최근 제가 교과서 교정안을 계기로 김구선생을 테러범으로 가르치는 세상이 왔으니 머지 않아 이순신장군을 살인마로 가르치는 세상도 오겠네'라고 빈정거린 사실에 대해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친일파 떨거지들로부터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과 비난을 들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그들은 김구선생이 민간인을 때려 죽인 건 무조건 잘못한 일이며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논조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교정안 교과서의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부류로 짐작되는 사람 하나가 잡다한 사설과 충언을 가장한 힐난으로 저를 훈계하는 글을 내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물론 그의 글에 리플을 달아 드리기는 했지만 제발 앞으로는 내 홈페이지에 와서 중복되는 내용으로 왈가왈부하는 친일매국노 떨거지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재차 답변을 복사해서 올리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 그대가 행한 일은 이미 이화보(李化甫)가 명백하게 고한 바 있으니 사실대로 말하라. [답] 내가 금년 정월 24일 용강(龍崗)으로부터 안악(安岳)으로 가던 도중에 평양 사람 정일명(鄭一明)과 함경도 정평(定平) 사람김장손(金長孫)과 김치형(金致亨)을 만나 같은 배를 타고 치하포(鴟河浦)에 와서 점주(店主) 이화보를 찾아가 저녁을 먹고 그곳에 투숙하였다. 이튿날 밝은 새벽에 조반을 마치고 길을 떠나려 하였는데, 점막(店幕)의 법도가 나그네에게 밥상을 줄 때 노소(老少)를 분별하여 그 차례를 마땅히 지켜야 하는데도 손님 중에 단발을 하고 칼을 찬 수상한 사람이 밥상을 먼저 요구하자 여점원이 그 사람에게 먼저 밥상을 주므로 마음으로 심히 분개하였다. 그래서 그 사람의 근본을 알아본 즉 일본인이므로 불공대천지수(不共戴天之讎)라고 생각이 되자 가슴의 피가 뛰었다. 그러한 때 그 일본인이 한눈을 팔고 있는 틈을 타서 발길로 차 거꾸러뜨리고 손으로 때려 죽여서 얼음이 언 강에 버렸다. 그러고 나서 동행한 세 사람은 약간의 현금을 가져다가 점주에게 8백금을 맡기고, 그외의 돈은(후략) 토전양량(土田讓亮) 격살건 취조문에서 발췌. 테러라는 단어는 오늘날 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비인도적 범죄행위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교과서 교정안이 애국지사들을 테러범으로 규정하는 소치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것입니다. 친일파와 그 떨거지들에게 물어 보고 싶습니다. 왜정 때 일본 군인이나 순사가 무장도 하지 않은 우리 나라 민간인들을 수십 명씩 때려 죽인 건 괜찮고 김구선생이 일본인 한 명을 때려 죽인 건 세계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는 도덕관이나 자비심 따위는 도대체 무엇에 근거하는 것입니까. 친일에 근거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기독에 근거하는 것입니까. 작금에 제가 보여드린 몇 가지 지적들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짚고 넘어 가야할 정체성과 도덕성에 관한 문제들입니다. 귀하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어떤 작가가 잘못된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지적하면 어떤 성향의 소설을 써온 사람이든 정치소설가로 둔갑해 버리는 겁니까.
눈이 내리는 날은 공연히 들뜹니다. 눈처럼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날씨는 쌀쌀하고 찬바람은 볼을 때리는데 포근한 기운 같은 걸 느낍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오래 못 만난 그리운 벗한테서 연락이라도 올 것 같은 느낌으로 서성입니다. 김종해 시인은 차가운 눈이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눈은 가볍다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내리는 눈은 포근하다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는 눈 내리는 날은 즐겁다 눈이 내릴 동안 나도 누군가를 업고 싶다 ---김종해 「눈」 전문 '쿨'한 뉴욕타임즈 사설 www.usabriefing.net 타임즈 기사 원문 + '베스트' 해석 VOA '쉬운 영어' 완전 대역 한양사이버대 입학안내 go.hanyangcyber.ac.kr 교육부평가 최우수대학, 장학혜택, 선후배 인적네트워크, 09년 입학안내. 캐나다전문 김옥란유학원 www.kimokran.co.kr 캐나다 밴쿠버, 토론토, 빅토리아, 몬트리올, 캘거리 등 캐나다어학연수. 눈은 가벼워서 "서로가 서로를 업고 있기 때문에" 포근하다는 것입니다. 가벼워지지 않으면 업고 있을 수 없지요. 춥지 않았으면 비가 되어 적실 것들이 눈이 되어 우리에게 옵니다. 때로는 칼칼하게 추운 인생이 더 우리를 더 아름답게 합니다. 춥기 때문에 서로의 잔등에 볼을 부비기도 하고 끌어안기도 합니다. 춥기 때문에 따뜻한 사람이 그리워지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힘든 시간을 견디기도 합니다. 눈은 내리지만 즐거워집니다. 이런 날 나도 가벼워져 누군가를 업고 싶습니다. /도종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