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과 파도 겨울 동해에 다녀왔습니다. 바위에 제 몸을 몰아다가 던지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보았습니다. 아아아, 소리 지르며 보았습니다. 험한 바위를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게 터져 올랐습니다. 물결이 물결의 등을 밀고와 끝없이 쓰러지는 파도를 보며 아름다운 소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부서지면서 결코 부서지지 않는 물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끝없이 파도치고 있어서 아름다운 바다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밀려올 때도 있고 밀려갈 때도 있지만 그것 자체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외설악의 산맥을 보았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다웠습니다. 눈보라 치고 눈이 쌓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산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눈보라 치는 날을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앞산이 뒷산 또 그 뒷산과 이어지며 험한 능선끼리 모여 아름다운 그림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 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당신이 살아온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고 있는지요? 험한 삶을 험한 채 놓아두시지 말고 아름답게 바꾸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도 격랑인 채로 놓아두지 마십시오. 암초를 만나서 파도는 더욱 아름답게 솟구쳐 오르지 않습니까? 아니 그냥 겨울동해바다에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파도치는 바다를 한나절쯤 바라보다 오시기 바랍니다. /도종환 시인
군고구마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한번은 원주시 봉산동에 있는 교육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어요. 시내 길모퉁이에서 허름한 옷차림을 한 사람이 군고구마를 팔고 있었어요. 바람막이 포장을 쳐놓고, 포장 앞과 양 옆에 '군고구마'라고 써붙여 놓고 말이지. 서툰 글씨였어요. 꼭 초등학교 일이학년이 크레파스로, 혹은 나무 작대기를 꺾어 쓴 글씨 같아 보였는데, 안에서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먼 곳에서도 뚜렷하게 잘 보였어요. 그 글씨를 보며 걸으며 생각했지. '아, 얼마나 훌륭한가! 이 글씨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반갑고 따뜻할 것인가! 부끄럽다. 내 글씨 또한 저 '군고구마'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어림도 없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며 걸었어요." 김지하 시인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한 장일순 선생은 글씨로도 이름이 난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바람막이 포장에 붙은 '군고구마'란 글씨가 얼마나 훌륭한가 하고 말씀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비록 초등학교 일이학년 아이가 쓴 글씨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지만 그 글씨에는 삶의 절박함이 배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 절박함이 정성을 다해 글씨를 쓰게 한 것이 '군고구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서예가의 글씨보다 훌륭하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글씨를 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반갑고 따뜻하게 느낀다면 어떻게 훌륭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하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잘 쓴 우리의 글씨는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준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 보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우리가 쓴 글, 우리가 부른 노래, 우리가 그린 그림이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었는지, 기쁨이 되고 희망이 되었는지 돌이켜보자는 것이지요. 절실함이 없는 글, 절박하게 부르지 않은 노래, 치열하게 삶을 던져 그린 그림이 아니라면 길거리에 붙어 있는 '군고구마'란 글씨만 못하다는 겁니다. "경기침체 때문에 군고구마 장사도 불황"이라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불황으로 이윤이 박해진데다 판매량도 지난해에 비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날 하루 종일 거리에 서서 벌벌 떨면서 원가 1만1,000원인 고구마 10㎏(40~50개)을 다 팔아야 3만~4만원 가량 번다는데 그것마저도 벌기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삶은 갈수록 절박해지는데 세상은 그것을 절박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절실함과 진정성을 잃어가고 있는 건 예술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도종환 시인
화이부동(和而不同) 새해가 되면 서로 덕담을 주고받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덕담을 한자성어처럼 압축된 말로 줄여서 전하기도 합니다. 시화연풍이니 근하신년이니 하는 말들이 그렇습니다. 《교수신문》이 180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올 한 해 희망을 주는 사자성어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더니 '화이부동' 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 일간지가 전합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참 좋은 말입니다. 이 말은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데서 비롯된 말로『논어』'자로' 편에 나옵니다. 군자는 화합하고 화목하되 남들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은 점이 많아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화이부동의 부동(不同)을 더 넓게 보면 남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소신 없이 남과 똑같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화합하려면 상대방을 인정해야 합니다. 상대방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타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와 대화하고 공통의 이해가 만나는 지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화합의 과정입니다. 화합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념이 다르고 계층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살아온 지역과 문화가 다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아우르고 대립을 최소화하며 싸움과 전쟁으로 가지 않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군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차이와 불평등을 인정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최소화하고 갈등을 풀어가며 공통의 이해를 끌어내어 평등하고 민주적인 결론을 도출해 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정치입니다. 그래서 정치는 어려운 것입니다. 동이불화(同而不和)하기는 쉽습니다. 나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하고만 모여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그 사람들하고만 어울리며 같은 이해관계만을 관철하는 일은 쉽습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힘으로 누르고 따르지 않으면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관철시키고 복종하게 하는 일은 편한 방법입니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 하고 어떻게 일하느냐는 말이 대통령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 정부의 임기가 끝나고 나서 평가를 받아야 할 때 가장 아프게 지적받는 것 중의 하나가 화이부동하지 못하고 동이불화한 정권이었다는 평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하고 사회적으로 불균형한 것을 조정하고 최소화해나가는 것을 정치라고 합니다.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폭력입니다. 사회가 성숙한다는 것은 동의 논리에서 화의 논리로 변화해 간다는 것입니다. 싸움보다는 화합, 힘보다는 대화, 전쟁보다는 평화, 지배와 억압보다는 공존공생, 차별보다는 존중, 편견과 무시보다는 관심과 인정이 필요합니다. 정치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그렇고 국제관계와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화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진 사람은 화의 논리에서 출발합니다. 아니 화의 논리야말로 신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웃, 즉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끝없이 요구하는 분이 우리가 믿는 신입니다. 우리들 각자도 정치하는 사람들도 동이불화하지 말고 화이부동하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합니다. /도종환 시인
눈 내리는 벌판에서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다 발자국 소리만이 외로운 길을 걸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다 몸보다 더 지치는 마음을 누이고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지고 싶다 둘러보아도 오직 벌판 등을 기대어 더욱 등이 시린 나무 몇그루뿐 이 벌판 같은 도시의 한복판을 지나 창 밖으로 따스한 불빛 새어 가슴에 묻어나는 먼 곳의 그리운 사람 향해 가고 싶다 마음보다 몸이 더 외로운 이런 날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터져오르는 이름 부르며 사랑하는 사람 있어 달려가고 싶다.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집으로 가던 기억이 있지요. 날은 어두워오는데 마음은 급해져 미끄러지기도 하며 눈 쌓인 길을 걸어갈 때가 있었지요. 군데군데 짐승 발자국 같은 흔적 말고는 사람이 지나간 자취가 없는 길을 걸어가는 동안 입에서는 더운 김이 뿜어져 나오고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도 했지요. 얼마 남지 않았어, 조금만 더 가면 돼, 하고 자신에게 되풀이해서 말하며 자신을 위로하며 눈길을 걸어갔지요.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동네의 집들 그 가운데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창이 눈에 들어오고 비로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지는 시간이 있었지요. 거기가 우리 집이었지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우리 집. 말소리조차 따뜻하게 창문을 타고 흘러나오는 집. 집은 얼마나 큰 위로였던가요. "엄마!"라고 소리쳐 부를 때 우리의 가슴은 얼마나 고동쳤던가요. 가방이며 웃옷을 받아주며 무어라고 막 쏟아져 나오는 말들, 그 말들은 잘 안 들리고 올 곳에 왔다는 생각, 안심이 되고 편안해지고 무언가 가득 차 오르는 그것이 집이 주는 가장 큰 행복이었지요. 지친 발 지친 몸을 아랫목에 깔린 이불 밑에 넣으며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따뜻했던가요.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극히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들만으로도 겨울밤은 얼마나 즐거웠던가요. "둘러보아도 오직 벌판 / 등을 기대어 더욱 등이 시린 나무 몇 그루뿐 / 이 벌판 같은 도시의 한복판"에 던져진 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마음보다 몸이 더 외로운 이런 날"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터져 오르는 이름 부르며 /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가고 싶습니다.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편안하고 좋은 사람, 사소하고 평범한 이야기만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도 기쁘고 뿌듯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러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가고 싶습니다. 고갯마루에 서서 따스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 집을 바라보며 가슴이 쿵쾅거리고 싶습니다. 그 이름을 소리쳐 부르고 싶습니다. 반가워서 손을 잡고 팔짝팔짝 뛰고 싶습니다. 어서 들어오라고 손을 잡아 끄는 동안 입에서 웃음이 지워지지 않는 그런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습니다. "몸보다 더 지치는 마음을 누이고 /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며 깊어지고 싶습니다." /도종환 시인
세 가지 즐거움 며칠 쉬는 겨울휴가 동안 인제 내린천에 가서 하룻밤 자고 왔습니다. 몇몇 친한 벗들과 새로운 곳에서 만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편하고 즐거운 일입니다. 상촌 신흠선생은 야언(野言) 이란 글에서 "문 닫아 걸고 마음에 맞는 책 뒤적이기, 문 열어 마음에 맞는 벗 맞이하기, 문을 나서 마음에 맞는 경치 찾아가기, 이것이 인간의 세 가지 즐거움이다." 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휴가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주어지면 누구나 이 세 가지 중의 어느 한 가지 생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역시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 마음에 맞는 벗을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평상시에 가보고 싶어서 마음에 담아 두었던 경치 좋은 곳을 찾아가는 사람, 이 세 사람 중의 어느 한 사람이었던 적이 많았을 겁니다. 물론 요즘은 이보다 더 많은 볼거리 더 많은 즐길거리들이 널려 있으므로 휴가를 보내는 방식도 훨씬 넓고 다양하고 풍부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겨울강가의 작은 집에서 마당에 장작불을 지펴놓고 그 위에 소금뿌려 생선이나 조개를 굽고 찬 더덕술 한 잔을 마시며 고개를 꺾다 상현달을 올려다보는 낯선 일박도 즐거운 일로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랜만에 올려다 본 겨울 하늘 상현달 옆에 떠서 홀로 빛나는 별이 샛별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다툰다든가, 북두칠성이 늘 같은 자리에 떠 있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옥신각신하는 시간은 그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의견이 안 맞기도 하고, 흉을 보거나 놀리기도 하며, 작은 사건을 침소봉대하여 친구를 곤경에 빠뜨리고는 즐거워하는 일도 있지만 벗들과 만나 보내는 그런 즐거움 또한 여행이 주는 빼놓을 수 없는 기쁨 중의 하나입니다. 여행 가방을 싸며 가방 안에 넣었던 새로 나온 소설은 차 안에서 40여 쪽을 읽다가 접은 채로 있지만 새로 읽기 시작했으니 오래지 않아 다 읽게 되리란 기대로 설렙니다. 소설 속에서 잃어버린 엄마는 찾을까 못 찾을까 궁금해지지만, 그 생각은 머릿속에 넣어두고 친구들과 세상 이야기를 하는 동안 겨울밤이 깊어갑니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 여유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 그런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삶을 새롭게 충전하는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찾는 삶의 의미와 행복도 멀리 있지 않고 나날의 생활 속에 깃들어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도종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