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220113332&Section=04 악덕의 씨를 심는 교육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 이런 소망을 갖지 않은 부모나 교사는 없을 겁니다. 부모가 되어서 아이들이 공부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습니까? 공부 잘 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은 교사가 또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넘치며 쏟아 붓는 재정과 시간이 많은 나라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잘 하도록 할 것인가?' 그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주관하고 해석하는 교과부의 교육관은 학교간 시도간 경쟁을 통해 성적을 올리고 공부를 잘 하게 하자는 방식입니다. 전국 180개 학군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성적 향상여부에 따라 예산을 차등지원하고 교장과 교사의 인사나 승진과 평가에 반영하겠다고 교과부는 말합니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성적이 향상될 수도 있을 겁니다. 지금도 대학입시가 끝나면 명문대 합격한 학생숫자가 학교별로 언론에 공개되어 학교가 서열화 되고 교사들이 심한 압박감을 받는데 앞으로 교장은 교사들을 더 옥죌 수밖에 없고 교사는 지금보다 더한 문제풀이식 수업으로 학생들을 다그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우파가 정권을 잡으면 이렇게 경쟁교육을 강화합니다. 1980년대 후반 영국도 시장논리를 토대로 한 경쟁교육을 밀어붙였고, 미국도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한 이래 미국학생의 성적이 떨어진다며 경쟁교육을 강화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역간 학교간 서열화가 심화되고, 좋은 학군을 향해 이동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사회갈등은 더 심화되었으며, 공교육은 파행의 길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결국 영국정부는 지난 해 사실상 일제고사를 폐지하였으며, 미국의 오마바 정부도 부시 정부까지 이어져 온 교육정책을 바꾸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우리보다 수업시수가 훨씬 적고 학원이 없으면서도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핀란드에서는 경쟁이 아닌 협력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이 나라에서 경쟁은 친구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난번의 나보다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뒤처지거나 낙오하지 않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교사와 학교와 학부모 3자가 지혜를 모으고 협력합니다. 어릴 때부터 교육을 복지와 연계하여 생각하고, 어린이의 건강과 정서적 발달과 지적능력의 성장을 위해 국가와 지역사회가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교육을 통해 정직하고 협력할 줄 알며 신리 받는 사람, 끈기 있게 노력하는 사람, 책임 있는 인간으로 키우는 일이 사회와 국가를 위해 꼭 해야 할 일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성장경쟁력지수 1위, 글로벌 경쟁력 1위, 경제적 창의성 지수 공동 1위, 환경지속가능성 지수 1위이며 반부패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그것을 교육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일제고사는 물론 없지만 일제고사를 보더라도 우리처럼 공부 못하는 아이는 빼고 거짓으로 성적을 보고하거나, 그 아이가 결석하도록 하거나, 운동부 학생들은 시험을 치르지 않게 하는 일은 저지르지 않을 겁니다. 학교교육에서부터 뒤처지는 아이를 대량으로 양산해내며,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단계에서부터 인생의 서열화가 시작되는 우리 교육의 시스템은 그대로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믿음이 아니라 불신, 칭찬과 박수가 아니라 원망과 적개심, 평화가 아니라 싸움, 상생과 공존이 아니라 대립과 미움의 마음을 지니며 살아가게 만듭니다. 경쟁교육은 이런 체제를 제도화하는 토대입니다. 일찍이 루소는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사람이 어린이 교육에 뜻을 두어 온 이래 어린이를 지도하는 방법으로써 고작 경쟁심이니 질투심이니 선망이니 허영이니 탐욕이니 저열한 외구심(두려움)이니 하는 따위, 가장 위험하고도 가장 동요되기 쉬운, 그리고 신체가 형성되기도 전부터 벌써 영혼을 부패시키기에 가장 적절한 여러 가지 감정들밖에 생각해 내지 못했다니 참으로 이상스러운 일이다. " 루소는 경쟁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이런 교육은 어린이 마음 속에 악덕의 씨를 심는 것이라 했습니다. 잔인한 교육이라고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경쟁만으로도 우리의 인간성과 공동체의식과 사회통합력은 망가질 대로 망가졌습니다. 앞으로 더 심한 경쟁체제를 만들어 가면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살아남는 소수와 실패했다고 느끼는 다수를 고착화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경쟁교육이 조장하는 성적올리기 방식은 교육만 망가뜨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간성과 삶 전체를, 공동체와 우리의 미래를, 그리고 사회 전체를 타락하게 만들며,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사회가 되는데 기여하게 합니다. 대학입시를 위해 혹사당하는 초중고 교육과정을 마친 이 나라 모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이런 형태의 교육이 지속가능한 교육인가 물어보십시오. 창의적이고 생산적이고 인간적인가 물어보십시오. 글로벌경쟁력이 있는가 물어보십시오. 그래도 경쟁교육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대답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요? /도종환 시인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 - 도종환 (132)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거대한 도시. 수많은 집단. 그 속에 홀로 서 있는 한 개인. 이런 생각을 하면 나 자신의 존재는 한없이 미약하게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군중들 사이에 서있는 자신을 남들에게 알리고 싶어 합니다. 고립된 자리에 물러나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나를 칭찬하는 소리에도 귀가 얇아지고, 박수소리만 들어도 금방 흔들립니다. 돈의 위력을 발견하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뛰어다니게 되고, 권력의 전지전능함을 맛보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온갖 길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단 하루도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쫓기듯 삶의 벌판을 누비고 다닙니다. 그렇게 사는 동안 우리는 조금씩 달라져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때 묻어 있고 혼탁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그 삶의 테두리를 벗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런 어느 저녁 혼자 펴 보는 『채근담』한 쪽. 우리는 고요하게 가라앉은 샘물 옆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됩니다. 밤 깊어 사람소리 고요한 때에 홀로 일어나 앉아 내 마음을 관찰해 보면 비로소 망념(妄念)이 사라지고 참된 마음만이 홀로 나타남을 알면서도 망념에서 도피하기 어려움을 깨닫는다면 또한 이 가운데서 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리라. 권세와 이익과 사치와 화려함은 이것을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을 깨끗하다고 하지만 이를 가까이 하면서도 물들지 않는 사람을 더욱 깨끗하다고 한다. 잔재주와 권모와 술수와 교묘함은, 이것을 모르는 사람을 높다고 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을 더욱 높다고 한다. 세리분화(勢利紛華). 권세와 명리와 사치스러움과 화려함은 사람들이 얼마나 동경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추악해집니까. 그래서 이런 것을 가까이 하려 하지 않는 사람을 우리는 고결하다고 합니다. 청렴하고 결백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멀리하기 위해 마음을 식은 재처럼 가지고 세상 모든 것과 관계를 끊어 버린 채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과 가까이 있으면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비리와 불의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깨끗한 사람일 것입니다.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교묘하게 남을 속여 넘기거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의 사람됨에 고개를 숙입니다. 그러나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높은 인격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몰라서 못하는 사람과 알면서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후자가 훨씬 더 고매한 사람일 것입니다.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서 자라기 시작했어도 꽃 그 자체는 흙 하나 묻지 않고 피어 있는 것처럼 그의 인격은 빛날 것입니다. 눅눅한 강가나 늪지에 알을 낳으면서도 그 새가 뻘흙 속에서만 살지 않고 푸른 하늘을 날며 살도록 키우는 새들처럼 그의 정신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벼가 너무 빽빽하게 심어져 있어 바람 하나 통하지 못하다가 서로 붙어 썩어 가는 병을 문고병이라 합니다. 많은 벼들이 함께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자라는 것은 그들 사이에 최소한의 자기 존재를 지켜나갈 수 있는 거리와 여유를 확보해 주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으되 썩지 않으며, 여럿 속에 있으면서도 자신을 지켜 나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멈추어 있는 구름 같은 마음 가운데서도 솔개가 날고, 고요한 물결 같은 마음속에서도 물고기가 뛰노는 듯한 기상이 있어야 이것이 도를 깨달은 사람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본심을 잃거나 흔들리지 않는 사람 이런 사람이 대인이요, 상황과 때에 따라 마음을 잃고 흔들리는 사람을 소인이라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순간순간 어떤 일에 부딪칠 때마다 망심, 즉 허망한 생각과 삿된 마음에 빠지기 쉬운 게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고요한 밤 홀로 되어 가만히 자신의 내면으로 돌아와 보면 그곳에 아직도 덜 때 묻은 자기의 청정한 본심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소리 없이 되살아나는 본래의 무구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망심도 내 마음이요 진심도 내 마음이어 그게 한 마음의 다른 작용이었던 것을 알게 되면 내가 내일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