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그렇게 어려운가요」(시인 조용미) 2009년 7월 10일 시인과 소설가는 동류인 줄 알았다.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동류도 아주 다른, 이보다 더 다를 수는 없는 동류다. 일상은 시의 적인가. 시는 정말 일상의 반대편에 서 있기만 한 것인가. 특별히 가까이 지내본 소설가가 없어서 나는 소설가나 시인이나 같은 글쟁이이므로 동일한 안테나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러나 몇 안 되지만 내가 겪어 본 바로, 우리는 같은 동네에만 살지 집의 크기도, 위치도, 창문의 방향도 거의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되었다. 외국인과의 결혼 뒤에는 영주권이 있고, 이방인에 대한 견제 뒤에는 국수주의가 있고, 고슴도치의 털 뒤에는 우아함이 있다지만, 시의 뒤에는 시인이 있고, 시인의 뒤에도 시가 있을 뿐이다. 얼마 전에 소설 쓰는 후배를 만나기로 했다. 만날 장소로 나가려다 아무래도 장소를 변경해야 할 것 같아서, 약속시간이 한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조금 다급한 마음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쪽엔 아는 식당이 없어. 인사동에서 만나 삼청동 쪽으로 가야겠어. 그 건너편 저쪽으로‥> 약간의 불안감은 있지만 나는 우리가 움직일 동선이며 만날 장소를 눈앞에 그리며 또박또박 문자를 눌렀다. 조금 지난 후에 답이 왔다. <네. 종로경찰서 길 건너편 삼청동 입구에서 뵐게요.> 몸에 착 감기는 것 같은 답이라 얼른 문자를 보냈다. <맞아. 바로 내가 표현하려던 말이야. 곧 보도록 하자.> 그 날 후배가 만나서 한 말을 옮겨 보자면 이렇다. “저는 선배님 문자 받고 설마 이 메시지가 끝은 아니겠지 하고 다음 문자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더 이상 문자가 없어서, 설마하던 마음을 포기하고 답을 드렸어요. 그런데, 맞아 바로 이게 내가 표현하려던 그 말이었다니. 어휴, 선배님 저니까 이 말을 알아 들었지 다른 사람 같으면 어림도 없어요.” 그동안 내 화법에 약간이나마 단련이 되어 말을 알아 들은 거라는, 그런 요지의 말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후배에게 말했다. “아니, 그, 건너편, 거기다 저쪽이라고까지 했으니 그보다 더 정확한 말이 어디 있어? 너는 어쩌면 그렇게도 말을 정확하게 할 수 있는지 부러워. 역시 소설가는 다르구나.” 운전 중인 누군가에게 전화로 길을 알려 줄 일이 있었다. 나는 친절하게 성심을 다해 설명했다. “거기서 앞을 쭉 바라보면 나무들 중에 유난히 녹색빛이 짙은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거기서 우회전하면 돼.” 상대방은 못 참겠다는 듯 버럭 화를 냈다. 운전 중인 사람에게 그렇게 설명을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후배에게 며칠 후 이메일을 받았는데 끝이 이랬다. ‘선배님 말씀을 신통하게도 잘 알아 듣는 후배 OO 올림’ ■ 필자 소개 조용미(시인) 1962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가 있다.
「만두 이야기_2」(시인 최치언) 2009년 7월 9일 그러니까 군대 있을 땝니다. 작대기 하나 달고 부대 배치를 받았는데 만두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니까요. 달 보고 보초 서면서 눈물 깨나 흘렸습니다. 남들은 고향에 계신 어머니 생각에 또는 영자, 순자, 말자가 보고 싶어 운다고 하지만 전 오로지 만두가 먹고 싶어 울었습니다. 그렇게 간절하니까 송편 같은 초승달이 어느 날부터는 만두로 보이는 겁니다. 이런 빌어먹을 일이 세상에 또 어딨습니까? 보안사에 잡혀가 혀가 꼬이도록 뒈지게 맞았습니다. 달 때문이냐고요? 뭐 달이 대한민국 국방부 겁니까. 그게 아니라 제 윗고참 때문이었는데 이 자식이 자신의 수첩에 제 이름을 써넣었기 때문입니다. 그 고참이 사람 좋기는 저희 대대에서 제일 좋았는데 또한 생각이 불온(?)하기로도 제일이었죠. 제가 보안사에 끌려갔을 때 이 고참은 용공인가 좌익인가 하는 세력으로 몰려 완전히 소똥이 돼버렸더라구요. 저도 다른 방으로 끌려가 소가 뒷걸음질하다 밟은 개똥이 되어 버렸죠. 그들이 자꾸 불라는 겁니다. 그래 제가 그랬죠. 뭘 불어요? 전 아무것도 모른다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닙디다. 자꾸 맞으니까 술술 불게 되더라고요. 뭘 불었느냐면요. 어느 날 동사무소 방위가 영장을 가지고 집으로 찾아왔고, 그때까지 반백수로 빈둥빈둥거리는 제가 꼴보기 싫으셨던 어머니는 기쁨을 감추시지 못한 채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고, 저는 그런 어머니가 미워 이불 뒤집어쓰고 울었던 거하며, 훈련소까지 따라온 친구녀석과 입소 전날 밤에 여관에서 소주를 홀짝거리며 ‘나쁜 새끼 죽여서 땅을 파고 묻을 새끼’ 뭐 이런 가까운 친구일수록 해서는 안 되는 말을 막 주고받다가 옆방에서 들려 오는 여자의 신음 소리에 놀라 조용히 이불 덮고 자던 거하며, 훈련소에 들어가서는 한 일주일 동안은 똥이 안 나와서 쩔쩔매던 거하고, 그리고 기어이 막혔던 똥이 터져 나온 날 제 똥구멍으로 끝없이 쏟아지는 시꺼멓게 탄 똥을 보며 서럽게 울던 거하며, 모두 불었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말하자 대한민국 육군 중에서 가장 더러운 새끼라며 보안사 대위가 제 정강이를 걷어차 버리더라구요. 그리곤 발가벗겨 거꾸로 매달렸어요. 거꾸로 매달려 보셨어요? 대가리가 개수구멍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온통 피가 대가리로 사정없이 회오리치며 쏠리는데 대가리에 뚜껑이 있다면 딱 따버리고 싶더라니까요. 그리고 불알이 배꼽 쪽으로 쏠리는 기분은 또 어떻고요.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검은 총신 같은 물건이 얼굴을 향하고 있는 그 기분 정말로 더럽습디다. 하여간 불나게 맞았습니다. 그렇게 맞기를 수일. 그쪽에서도 안 되겠나 보더라구요. 그 고참이 제 이름을 쓴 수첩을 제게 보여주더라구요.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그 수첩에 이름이 씌어 있는 놈들은 모조리 붙잡혀서 저처럼 고문을 당했다고 합디다. 그런데 웃기게도 제 이름 옆에 괄호 열고 ‘만두’ 괄호 닫고 이렇게 씌어 있는 겁니다. 뭔가 좀 알겠더라구요. 더 이상 그 고참을 미워할 수도 없더라니까요. 그런데 보안사 놈들은 제 세뇌명이 ‘만두’ 라는 겁니다. 만두가 뭘 의미하는지 불라는 거예요. 정말 그런 억지는 처음 봤습니다. 그래 전 그 만두는 언젠가 그 고참이 ‘박이병, 너는 뭘 젤로 먹고 싶냐?’ 하길래 만두가 제일로 먹고 싶다고 같이 대대운동장 풀 뽑을 때 말했거든요 그래서 그 고참이 휴가 나갔다 들어올 때 사다 줄려고 그랬을 겁니다, 했죠. 또 맞았습니다. 그 후로 그들은 제게 손을 대지 않더라구요. 독종이라고 그러면서 전기나 물을 사용해서 저에게 고통을 줍디다. 그러나 한번 그 고참의 마음을 안 이상 전 끝까지 버텼죠. ‘그건 고참의 아름답고 순순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저버리지 말자.’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면요. 그 자식들이 진술서라고 하는 걸 저에게 줬는데 그 고참이 순진한 저를 ‘만두’라는 암호명을 가진 용공 세포 조직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에 대해 사인하라는 겁니다. 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투쟁은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웠고 나중에 보안사 대위녀석도 줏대 있는 저를 은근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어요. 말투가 달라지더라니까요. 부드럽고 온화해졌어요. 그리고는 양손에 한 가득 만두를 사오더라구요.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고요? 대위의 성의도 있고 해서 만두 먹으면서 진술서에 사인해 버렸죠. 애초에 다 그 만두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이제 그 만두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만두 때문에 벌어진 사건은 종결된 것이지요. 그 고참도 저를 이해할 겁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오면 그 고참하고 쓸쓸한 산정묘지 같은 곳에 가서 만두나 한판 먹으면서 조용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 필자 소개 최치언(시인) 197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과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가 있다.
「만두 이야기_1」(시인 최치언) 2009년 7월 8일 만두와 애인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전 만두를 택합니다. 애인을 팔아서 만두를 더 사먹을 수 있다면 하이힐로 처맞더라도 그렇게 할 겁니다. 군대 말년이던가요? 면회 온 졸따구의 어머니가 찬합 가득 만두를 싸 온 겁니다. 그래, 한 손에는 만두 찬합 들고 한 손에는 꽃을 꺾어들고, 졸따구와 저는 다정히 부대 뒷산으로 올라갔죠. 저 반 먹고 졸따구 반 먹자고 말하고 우선 나무 위에 졸따구 먼저 올라가 망을 보라고 했습니다. 행여 만두 냄새를 맡고 전 부대원들이 개 떼처럼 달려들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꽤 큰 나무라서 졸따구를 무등 태워 올려 줬죠. 멀리 뻐꾹새는 봄날을 노래하지, 찬합 속의 만두는 그득하지, 졸따구는 만두 하나만 달라고 나무 위에서 애타게 울어 대지. 시절 참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겁니다. 처음엔 행정병이 졸다가 방송 스위치를 잘못 조작한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졸따구가 나무 위에서 저를 슬픈 까마귀처럼 쳐다보는 겁니다. 슬쩍 연병장을 보니까 장난이 아니었죠. 실제로 비상이 떨어진 겁니다. 연병장에 개 떼처럼 부대원들이 집합하고 있었죠. “이런 말년에 새 됐다.” 새 된 건 저만이 아니었어요. 얼결에 저 혼자 산을 내려오는 바람에 졸따구 녀석은 나무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나무에 갇혀 버린 꼴이 된 것이죠. 명심하십시오. 철창 없는 나무에도 갇히는 수가 있습니다. 하여간 트럭에 올라타고 어느 도신가로 갔습니다. 그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화약 냄새와 타이어 바퀴 타는 냄새가 진동하더라니까요. 총을 주고 대기하라니까 대기했죠. 실탄을 장전하라니까 장전했죠. 쏘라니까 쐈습니다. 군대라는 게 코로 밤송이를 까라면 까야잖아요. 정말 전 아무것도 몰랐어요.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단지 나무 아래 두고 온 찬합 속 만두만 걱정되더라고요. 나무 위의 졸따구는 새까맣게 잊어버렸죠. 그리고 다시 부대로 돌아왔어요. 이젠 총을 쏘지 말라기에 총을 쏘지 않았고, 실탄을 제거하라기에 빼 줬고, 총기를 소제하라기에 저녁도 먹지 못하고 총기를 번들번들하게 소제했죠. 그리고 부대 뒷산으로 달려갔죠. 그 날 그 나무 아래 찬합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물론 찬합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럼 졸따구는 그 나무 위에 있었겠습니까? 놀라지 마십시오. 그 나뭇가지엔 웬 까마귀 한 마리가 썩은 만두를 입에 물고 앉아 있는 겁니다. 까마귀 새끼가 다 먹어 버린 겁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래 그 까마귀 새끼를 향해 돌을 집어던져 버렸죠. 그리고 그 돌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전 제대를 했습니다. 전 정말 몰랐어요. 알고도 당했다고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전 정말 모르고 당했다니까요. 뭘 당했느냐고요? 수상한 시절이 그 날 그 맛나던 만두를 썩게 만들었으니까요! 만두를 썩게 하다니!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제 몸에서 썩은 만두 냄새가 나요. 그리고 누가 자꾸 제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환청이 들리지 않겠어요. 그 졸따구 목소리였죠. “김병장님, 만두 하나만 주세요.” ■ 필자 소개 최치언(시인) 197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과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가 있다.
「세상에 없는 범죄학 강의」(시인 최치언) 2009년 7월 7일 횡설이와 수설이가 그 집을 털려고 들어갔을 때 이미 그 집은 털려 있었습니다. 집은 오래 전부터 주인 없이 버려져 있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다 죽어 갈 판인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강아지가 불쌍하다면서 횡설이가 가져다 키우겠다고 합니다. 수설이는 안 된다고 합니다. 횡설은 쉽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수설은 만에 하나 잡히면 그 강아지가 증거물이 될 수 있다고, 모든 걸 다 덤터기쓸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횡설을 아래와 같이 설득합니다. “잘 들어. 니가 아직 이 세계를 잘 몰라서 그래. 범죄의 현장에서 증거는 매우 중요한 단서야. 너도 잘 알 거야. 강간범을 잡는 데는 여자의 질에서 나온 정액이나 옷이나 팬티에 묻어 있는 타액 등이 확실한 증거물이 돼. 또는 주변에 떨어져 있는 음모가 증거물이 되든지. 그럼 왜 범인들은 항상 증거물을 남기고 떠나느냐. 잘 생각해 봐, 범죄의 역사는 인류의 기원과도 같은 거야. 사람이 두 발로 서서 도끼를 만들어 쓸 때부터 인류의 범죄는 시작된 거야. 다시 말하면 인간이 도구를 발명한 것은 범죄를 저지르고자 하는 아주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되었다는 거지. 당장 저 새끼를 죽이고 싶은데 도구 없이 맞짱으로 안 된단 말이야. 그래서 돌을 집어 들었지. 돌을 집어 든 순간 팽하니 맛이 간 거야. 돌을 다른 돌에 마구 찧어 댄 거야.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인데 우리들도 그러잖아, 싸움 전에 제 성질에 먼저 돌아버려서 자기 옷을 찢어발기고 집기들을 마구 부수잖아. 그 정도로 이해하면 돼. 그리고 돌을 쳐다보니까 부서져 나간 돌이 날카롭게 벼려 있지 않겠어. 그런데 말이야, 이쪽에서 돌을 들고 설치는데 저쪽에서 그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진 않아. 저쪽도 돌을 집어 들지. 서로 돌로 대가리를 마구 찧어 대는 거야. 어느 쪽이 이길 것 같냐? 날카롭게 벼른 돌이 당연히 녀석의 대가리를 한번에 뽀개 놓을 수가 있는 거야. 위대한 도구의 발명이지. 그 다음으로 나온 것들의 도구를 잘 봐. 철붙이라고 어떻게 철을 만들었겠어? 그 돌대가리들이. 단지 하나 간절하게 죽이고 싶은 새끼 배때기를 푹 찔러 주고픈 마음 때문이었다고. 돌은 이미 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에 별 쪼다 같은 놈들도 다 싸우기 전에 돌을 부수어서 날카롭게 벼른단 말이지. 이젠 벼른 돌로도 대가리를 부술 수 없게 되어 버린 거지. 또 이해가 안 가지? 모기들이 모기약에 면역성을 키운 것을 보면 알 수 있어. 사람들은 더 강한 모기약을 만들어 내고 모기는 다시 그 모기약을 견뎌 내기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거지. 이것이 바로 투쟁의 역사라는 거야. 하여간 더 이상 돌로 안 되니까 실의에 빠진 원시인들이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자신들이 만든 돌을 불 속에 집어던지고 더 강하고 더 날카로운 그 무엇이 없나 고민하며 새벽을 맞이했을 때, 하나 둘 원시인들이 쓰러져 잠든 뒤에도 홀로 잠들지 않는 원시인이 있었단 말이지. 그 원시인은 돌이 녹아서 철이 만들어지는 것을 모닥불 속에서 환영처럼 본 거야. 잠 못 자고 맛 간 상태에서 본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광기의 역사라고도 하지. 이윽고 철이 발견되었고 그것은 칼이 되었지. 칼은 총이 되었고 또 그것은 미사일이 된 거야. 왜 이렇게 장황하게 말하느냐면 곧 인류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야. 그럼 범죄의 역사가 이처럼 깊고도 넓은데 왜 범죄자들은 그 자리에 증거를 남기느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주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너도 한번 생각해 봐라. 우리 인간은 남의 잘못을 보고 자신을 반성하는 동물이라고. 그놈의 증거 때문에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렇게 많은 범죄자가 붙잡히고 사형에 처해졌는데 어느 덜떨어진 놈이 증거를 남기겠니? 그런데도 증거를 남기잖아. 왜 그럴까? 그건 범죄자들이 부주의하기 때문이 아니야. 그렇게 쉽게 말해선 안 돼. 그건 마치 3월 봄이면 기어이 눈물을 쏟게 하는 까진 양파 같은 목련이 피고, 4월이면 라일락이 담장 가득 말오줌 같은 향기를 게워 내고, 5월이면 혁명가의 붉은 주먹처럼 장미가 온 세상을 향해 힘차게 피고, 6월이면 미루나무 위에 벼락이 떨어지고, 7월이면 청포도가 시금털털하게 익어가고, 8월이면 보름달이 무거워서 화투장에 떨어지고, 9월이면 때늦은 태풍이 때늦은 더위를 몰고 북쪽으로 사라지고, 10월이면 잔서리가 내려 기어이 사람이 얼어 죽고, 11월이면 자작나무숲을 걸어 고향으로 가는 나타샤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날리고 날린다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때에 전 팬티뿐이지만, 12월이면 크리스마스 카드가 교도소 식구통 안으로 들어오는 것과 같지. 다시 말하자면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란 거야. 그 숙명에 굴하지 않고 비껴서지 않으면 대부분이 12월의 교도소 안에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는 거라고. 그러니까 숙명을 비껴서야 해. 자, 정리해 보자. 범죄자가 증거를 남기는 것은 숙명이다. 인류의 역사는 범죄의 역사였다. 무수히 많은 선조 범죄자들이 그 숙명에 걸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고로 우리는 인류역사와 더불어 우리 범죄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숙명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그럼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당연히 강아지를 버리는 거지. 니가 강아지를 가지고 가겠다는 것은 니가 강아지를 좋아해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아지가 너를 붙잡아서도 아니야. 그냥 봄여름가을겨울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숙명이라고. 알겠어? 너는 숙명에 걸린 거라고. 그러니까 어서 강아지를 버려.” 여러분이 횡설이면 수설이가 이렇게 말하는데도 강아지를 가져가시겠습니까? ■ 필자 소개 최치언(시인) 1970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과 2001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가 있다.
「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시인 차주일) 2009년 7월 6일_마흔아홉번째 나는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한다. 매일 같은 시간대에 같은 탑승구 앞에 자리 잡는 나는 어제 만났던 사람이 안녕한지, 그제 보았으나 어제 보이지 않은 사람이 와 있는지, 옷차림새가 어떻게 바뀌는지 등등을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있다. 덕분에 30대 말 아주머니로부터 힐끗힐끗 쳐다보지 말아 달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 그때 나는 “선생님의 미모에 자꾸 끌리는 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살풋 웃어 줄 때, 내가 아침마다 두리번거리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 후 아주머니와 나는 통성명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밝은 미소로 웃어 준다. 밀리는 칸에 서서 마포역에서 동대문운동장역까지 가는 우리는 눈웃음으로 대화하곤 한다. 우리가 탄 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에는 늘 젊은 숙녀가 이어폰을 꽂고 눈 감은 채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고, 그 앞에는 일흔 가까이 돼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몸뻬 안에 안짱다리를 숨기고 서 계신다. 우리는 그 장면을 보면서 항상 눈웃음 대화를 하는 것이다. 내가 눈웃음을 보내면, ‘오늘 또 신경전이 벌어졌군요.’라고 이해한 아주머니가 내게 찡긋 눈웃음을 보낸다. 그러면 나는 ‘오늘도 재미나게 지켜볼까요.’라고 다시 눈웃음을 나눈다. 이런 광경을 처음 접했을 때, 젊은 숙녀의 몸이 불편한 거라 나는 생각했었다. 하루는 동대문운동장역에서 환승을 기다리는 할머니께, “할머니, 경로석 앞에 계시면 바로 자리가 생길 텐데요, 그리로 가셔서 서 계시지 왜 항상 젊은 숙녀 앞에만 서 계셔요.”라고 말을 붙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열변을 토하셨다. “내가요, 아이고 저 어린것이 어디 몸이 불편해서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나 보다 생각하고, 측은지심으로 염주알도 돌렸었는데요, 깜박 내릴 역을 지나쳐 청구역까지 가게 되었다가 봤는데, 그 젊은것이 씩씩하게 잘도 걸어갑디다. 한번은 잠깐 눈이 마주쳤는데, 내게 눈까지 흘기더라고요. 그래서 고약한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원래 운동도 할 겸 잘 서서 다니는 할망구지만, 손녀 같은 아이에게 버릇도 가르칠 겸 언제까지 견뎌 볼 작정입니다.” 나는 그들의 신경전을 끝낼 요량을 궁리하다가 묘안 하나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방귀 냄새로 유명한 뿡도사님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뭘 먹으면 방귀 냄새가 지독한지 자문을 구했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도 했다. 그 날 점심으로 치즈를 듬뿍 먹고 늦은 저녁을 비지찌개와 살코기, 그리고 달걀을 우겨넣었다. 나는 그날 밤 딸과 아들을 상대로 만족스런 임상실험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새벽부터 괄약근을 조이며 방귀를 모았다. 심지어 열차가 전역을 출발했다는 안내방송에 맞춰 한껏 숨을 들이켜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아주머니가 고개를 갸웃거려도 나는 오직 작전에 전념했다. 여전히 신경전은 계속되었다. 나는 젊은 숙녀가 앉아 있는 기둥에 궁둥이를 대고 무가지를 읽는 척 섰다. 할머니와 아주머니가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이 굽은둥이를 지나며 내는 끼이익 끼이익 소리에 맞춰 오토바이 시동 소리 같은 방귀를 분출했다. 잠시 후 비좁은 공간이 헐렁해지는 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앉아 있는 젊은 숙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잠든 척하던 볼과 콧날이 씰룩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내친 김에 하루 더 작전을 펴기로 했다. 그 날은 기존 양에다 반은 더 과식한 상태였다. 내가 두 번째 기둥에 기대고 서자, 아주머니는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이미 함빡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작전을 개시하자 전날보다 넓은 공간이 생겨났다. 젊은 숙녀가 벌떡 일어나 다른 칸으로 가면서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그저 웃어 주었다. 미안하지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다음날부터 2호차 두 번째 입구 옆자리에는 다른 사람들이 앉기 시작했다. 작전이 성공한 뒤 나와 아주머니의 아침 인사는 눈 대화 방법에 코를 만지는 방법 두 가지로 늘어났고, 할머니까지 합세하여 전장의 한 장면처럼 코를 만지는 작전을 교환하곤 한다. ■ 필자 소개 차주일(시인) 2003년도 《현대문학》으로 등단.
「엉뚱스러운 문학교실」(시인 김종태) 2009년 7월 3일_마흔여덟번째 대학교 문학 강의실에서 젊은 친구들과 함께 시와 소설을 공부하는 일은 오래된 나의 즐거움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문학작품 감상방법을 지도할 때 어떤 정답을 가르쳐 주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품 해석이란 ‘오독의 역사’일 것이라는 확신을 품은 나는 수강생들에게 교과서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는 새 해석을 해 보라고 권유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중간 기말고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길들어 온 수강생들에게서 참신한 해석을 기대하는 일은 다소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드문 일이지만 생뚱맞으면서도 그럴듯한 설을 풀어 대는 친구를 만나면 모두들 박장대소를 하게 된다. 그중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김수영의 대표시 <풀>에 대해서 두 명의 학생들에게 발표를 시킨 후 그 발표문에 관하여 토론을 하는 시간이었다. 처음 발표를 맡은 A학생은 이 시에 나오는 “풀”과 “바람”의 상징에 대해서 일반론적인 해석을 잘 정리해 주었다. 그 학생의 요지는 “풀”은 민중을 상징하며 “바람”은 독재 권력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A학생은 김수영이 살았던 시대의 역사적인 문제들까지 조목조목 언급했고, 거기에 덧붙여 그의 다른 시 <폭포>, <껍데기는 가라> 등까지 인용하면서 이미 중등학교 문학 참고서에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를 잘 풀이해 주었기에 큰 오류를 범한 것 같지는 않았다. 두 번째 발표자인 B학생은 앞서의 발표 내용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나왔다. 그 발표 요지는 “풀”과 “바람”의 관계를 대립 구조로 보지 말고 상호보완으로 보자는 것이었다. “풀”과 “바람”은 서로 도와주는 관계에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존재함으로써 상대의 존재 의의를 부각시켜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발목” “발밑”이라는 어휘 역시 암울한 현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지도하는 입장에 있던 나는 두 학생 모두를 칭찬해 주면서 A학생보다는 B학생이 참신성 면에서 더 낫지만 B학생의 견해는 다소 검증되지 않은 점이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이렇게 우선 간단한 지적들을 해 준 다음 청중인 다른 학생들에게 더욱 새로운 해석을 해 보라고 했는데, 그 순간 작정을 하고 온 듯 어느 건장한 남학생이 일어나 말하기를 “교수님, 저는 발표한 학형들이 이야기한 것들 모두 다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풀>, 이 작품 아주 간단해요. 이 시는 남녀의 정사를 묘사한 시라구요. ‘풀’은 여자구요, ‘바람’은 남자예요. 이렇게 보면 ‘풀’이 눕고 또 울고 ‘바람’보다 빨리 눕다가도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는 말,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요? ‘풀’이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는 말 당연하잖아요? 여자들이란 원래 이렇게 주도면밀하고 인내심 있는 존재 아닐까요? 이렇게 위대하고 거룩한 존재가 여성 아니겠습니까?” 그 날 그 강의실에서 이 생뚱맞고 용기 있는 한 남학생의 너무나도 새롭고 충격적인(?) 해석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남학생이 자신의 생각을 다 풀어 낸 후 한참 동안 강의실에는 폭소가 넘쳐흘렀다. 그 웃음 소리를 나는 인위적으로 멈추게 하지 못했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이 남학생의 새로운 이야기를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 해석이 가장 정답(?)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에는 정답이란 게 영원히 없으니 이것만 두고 옳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엉뚱한(?) 해석들을 자꾸 내놓다 보면 어느 날 작품의 정수리를 꿰뚫는 날카로운 비평도 생겨날 것이다. ■ 필자 소개 김종태(시인)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현재 계간 <시평>, 격월간 <정신과표현> 편집위원. 호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교수 및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저서 『한국현대시와 전통성』『정지용 시의 공간과 죽음』『문학의 미로』『떠나온 것들의 밤길』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