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보다 더 나빠질 수 없다. - 익명을 요청한 성공 판매원 어느날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 당시 나는 만나자고 하는 사람의 사무실 밖에 서 있었다. 나는 그를 만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의 비서는 지금 상사가 바쁘므로 나에게 시간을 낼 수 없노라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녀는 비서로서 상사를 시간 도둑으로부터 보호하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내 제의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서비스가 그의 시간과 돈을 절약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내가 무작정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면, 다음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는 그에게 쫓겨나 복도로 돌아오는 것임을 알았다. 나는 이미 복도에 서 있으므로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다음 일이 상상이 가는가? 나는 고객을 확보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문을 따려고 결심한 사람은 고객의 요구를 이행하려고 할거요." 요청한들 잃을 것이 없다 - 마르시아 마틴 나는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까봐 요청하지 않은 것은 바보스럽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이미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잖은가? 그러면, 그들은 내 말이 사실임을 깨닫고 박장대소를 한다. 요청하지 않은 지금, 당신은 아미 아무 것도 갖지 못했고 이미 실패했다. 그런데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또 가질까봐 두려워하다니! 정말 바보스러운 짓이 아닌가? 설령 원하는 것을 요청했다가 얻지 못한다고 한들, 누가 상관하겠는가? 어차피 요청하기 전에도 그것을 가지지 못했는데, 그러므로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Board 추천글 2022.09.10 風文 R 1708
맞춤법을 없애자 (3) 가짜 소설 <쭈꾸미>의 한 대목. “오랫동안 투정을 부려 ‘짜장면’이 표준어가 되었다. 우리 ‘쭈꾸미’도 표준어로 인정받기 위해 상소문을 올리자!”(‘쭈꾸미’는 비표준어). 정상적인 국가라면 정해진 원칙을 유지하고 적용하려고 한다. 만 18살에서 하루라도 모자라면 투표를 할 수 없다. 이게 국가 행정의 특징이다. 일관성! 이 원칙을 말에도 적용해왔다. 하지만 원칙의 뒷배가 든든하지 않다. ‘예컨대’가 맞나, ‘예컨데’가 맞나? ‘예컨대’가 맞다. 이유는? 옛날부터 그렇게 썼으니까.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서도’에 쓰인 ‘-지만서도’도 비표준어다. 이유는? 자주 안 쓰여서. ‘널판자, 널판때기, 널빤지’는? 모두 표준어. 다 자주 쓰여서. ‘겨땀’은 비표준어다. ‘곁땀’이 표준어다. 이게 표준어니까! 맞춤법을 없애자는 주장은 결국 ‘표준어’를 없애자는 것이다. 표준어를 정하는 주체를 국가에서 시민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표준어에 대해 말들이 많으니 국가는 ‘복수 표준어’라는 묘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 해방 이후 최고 희소식인 ‘짜장면’의 표준어 등극. 2011년 일이다. 10년 동안 5회에 걸쳐 74개가 표준어로 바뀌었다. 말은 날아다니는데 국가는 느리다. 심의회 횟수를 늘리고, 복수 표준어를 확대한다고 해결할 수 없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게 답이다. 말에는 저절로 질서가 생기고 관습이 만들어지고 하나로 정착하는 기질이 있다. 사람처럼 각각의 여정과 우여곡절이 있다. 말이 모이는 곳은 한 사회의 꽃인 사전이다. 언제까지 ‘쭈꾸미’들처럼 왕의 교지를 기다릴 텐가. 나만 빼고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논리학의 오랜 주제다.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발언.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출신인 내가 ‘강원도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래요’라 한다면, 이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참말이라면 강원도 출신인 나도 거짓말쟁이이므로 이 말도 거짓말이 된다. 거짓말이라면 나는 참말만 하는 강원도 사람이 되므로 이 말은 참말이 된다. 헷갈린다고? 해맑도다, 그대의 두뇌.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의 머리만 깎아 주는 이발사가 있다. 그는 자기 머리를 깎을까, 못 깎을까? 자기 머리를 깎는다면,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만 깎아야 하는데 스스로 머리를 깎았으므로 깎으면 안 된다. 머리를 깎지 않는다면,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에 속하므로 머리를 깎아 주어야 한다. 장군이 ‘내 명령에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면, 따를까, 말까? 모르겠다고? 복되도다. 그대의 투명한 두뇌. 말장난으로 보이겠지만, 많이들 쓴다. 어른은 아이에게 ‘딴 사람 말 듣지 마!’ 남자친구는 애인에게 ‘남자는 다 늑대니 조심해.’ 운전자는 화를 내며 ‘오늘 왜 이리 차가 밀려!’ ‘나만 빼고’ 생각하면 가능하다. 말하는 이는 말에서 분리된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를 빼고 이해하므로 꼬투리를 잡지 않는다. ‘당신도 딴 사람이고, 당신도 남자고, 당신도 차를 몰고 나왔다’며 정색하지 않는다. 안전한 이율배반. 우리는 ‘나만 빼고’ 식 말하기에 익숙해서 분열증에 걸리지 않는다. 부조리에 분노하되 공범인 우리도 함께 생각하면 좋겠다, 나만 빼고.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헝겊 주머니 평소에 집 안에서도 늘 헝겊 주머니나 헝겊 가방을 즐겨 들고 다니는 나에게 며칠 전에 바느질 솜씨가 매우 좋으신 팔순의 선배 수녀님 한 분이 작은 크기의 비단 주머니 한 개를 들고 오셔서 "이것 어때요? 여기에 무엇을 담든지 마음대로 하시고, 혹시 마음에 안 드시면 내게 다시 주세요."하셨다. 수녀님은 전에도 몇 번 색색의 자투리 비단 헝겊으로 앙징스런 복주머니들을 만들고 정성껏 복이라는 글자까지 새겨 주었는데, 나는 그것을 꽃이 귀한 계절에 수녀원을 방문하는 외국 손님들에게 작은 기념으로 가슴에 달아 드리기도 했었다. 검은 바탕에 국과.매화.단풍무늬가 그려져 있는 고운 비단주머니를 만들어 주신 수녀님의 정성도 고맙고, 주머니도 마음에 들어서 나는 어린 시절에 했듯이 그 주머니를 며칠간 베개 옆에 두고 잤다. 문득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여러 가지 노리개와 한복을 입을 때 달아 주시던 예쁜 주머니. 그 외에도 쓰임새에 따라 솜씨를 발휘하신 신주머니, 책가방, 성당에 들고 다니던 미사보 주머니 등이 생각난다. 특히 고운 꽃이나 나비, 새들을 수놓고 튼튼한 안감을 대어 만들어 주시던 헝겊 책가방은 하나도 보관 못한 것이 후회될 만큼 그리운 추억으로 떠오른다. 상점에서 산 고급스런 책가방이나 주머니들을 들고 다니는 요즘의 아이들을 보면 정겹고 소박한 헝겊 책가방을 그토록 좋아하고 열심히 들고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내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학교에 다녀오면 나는 얼른 가방을 열어 숙제부터 해놓고는 다음날 수업에 가져갈 교과서와 공책을 정성껏 챙겨 넣고, 동무들이 좋아할 만한 색종이나 인형옷에 필요한 자투리 헝겊들을 골라 넣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책과 도시락, 온갖 잡동사니로 무거운 가방도 내겐 늘 희망과 기쁨이 가득한 보물주머니로 여겨졌다. 밖에서 뛰어놀기를 좋아하는 동생에 비해 나는 늘 책상 앞에 붙어 앉아 가방 정리하는 것을 즐겼으므로 나의 별명은 `새침데기` `책벌레` 또는 `가방 싸는 아이`였다. 요즘도 가끔 헝겊 주머니나 가방이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한참 서서 구경을 하거나 꼭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당장은 필요 없더라도 일단 사놓고 보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퍽 오래 전 내가 필리핀에 있을 때, 한번은 시장에 갔다가 햐얀 푸대자루 몇 개를 얻게 되어 함께 공부하던 언니 수녀님과 같이 그것을 이용해 가방을 만들고 우리가 바닷가에서 주운 조개껍질들로 장식을 하며 즐거워하던 적도 있다. 푸른 작업복을 입고 외출할 때마다 그 가방을 들고 다니면 절로 파도소리가 나는 듯 낭만적으로 느껴지곤 했었다. 더 세련되고 우아한 가죽 가방을 구해 줄 테니 멀리 외출할 때만이라도 구질구질한 그 헝겊 가방은 좀 그만 들고 다니라고 옆에서 핀잔을 주거나 말려도 나는 굳이 헝겊 가방을 들고 다니길 좋아한다. 그래서 멀리 여행을 갈 때도 큰 헝겊 가방안에 여러 개의 작은 주머니들을 준비해 두었다가 기도서, 수첩과 볼펜, 세면도구, 속옷과 손수건 등을 분류해서 넣어 두면 찾기도 쉽고 무척 편리하다. 수도자의 신분으로 평생을 흰색, 검은색, 회색의 유니폼만 입다 보니 가방 속의 소지품 역시 화사한 빛깔과는 거리가 먼 우중충하고 검박한 것들뿐이지만 그 사이에서 잔잔한 꽃무늬나 별무늬의 작은 주머니들은 내게 늘 리본을 단 어여쁜 소녀처럼 다정한 웃음과 기쁨을 안겨 준다. 지난해 어느날은 불우이웃돕기 바자회에서 주머니가 세개 달린 갸름한 모양의 편지꽂이를 사다가 방에 걸어 두었는데, 나와 늘 가깝게 지내는 동료 수녀가 잠시 내 방에 들어왔다가 이걸 보더니 주머니 위에 살짝 얹혀 있는 리본 세 개를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모조리 가위로 떼어내는 것이었다. 내가 말리는데도 그는 리본이 없어야 더 깨끗하고 보기가 좋다고 했다. 나는 사실 연보라색 바탕에 진보라색 작은 리본을 달아 놓은 것이 예뻐 보여서 구입한 것인데-지금도 리본이 싹둑 잘려 밋밋한 모양이 되어 버린 그 편지꽂이를 보면 웃음이 절로 나고, 별것도 아닌 일로 끝까지 내 뜻을 우기지 못하고 리본을 쓰레기통에 내버리게 한 것이 매우 아까운 생각이 든다. 요즘도 매일 침방이 있는 윗집에서 일터가 있는 아랫집으로 푸른색이나 회색 헝겊 가방을 들고 왔다갔다하는 나에게 어떤 이들은 "늘 무엇을 주섬주섬 담고 나누어 주는 그 요술주머니 또 들고 나가는군요"하고 놀리기도 한다. 나는 "그럼요, 말씀만 하세요. 이 안엔 없는 것이 없으니까요"라고 대답하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분류해서 넣은 두는 자료실도 되고, 전해야 할 메모, 편지 그리고 사랑의 심부름거리로, 가끔은 작은 선물방이 되기도 하는 나의 기쁨 주머니를 흔들어 보인다. 헝겊 주머니나 헝겊 가방은 나의 오랜된 친구처럼 편안하고 만만해서 좋다. 때가 묻으면 언제라도 쉽게 빨아서 다시 쓸 수 있고, 매우 고급스런 재료로 만든 것일지라도 누가 그것을 필요로 할 땐 크게 아까워하지 않고 선뜻 내어 줄 수 있어서 좋다. 또 조금은 욕심을 내서 이것저것 여러 종류의 물건을 가지고 사는 얼마쯤의 사치를 누리더라도 이로 인해 비난받을까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는 내 나름대로의 수수한 멋과 여유를 즐기게 해주어서 좋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나의 가까운 이웃과 친지들에게 부담 없이 편안하고 수수한 모습의 헝겊 주머니 같은 존재가 될 수 있길 바라며 혼자서 가만히 웃어본다.
Board 삶 속 글 2022.09.09 風文 R 541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광섭편" 김광섭(1905~1977) 시인. 호는 이산. 함북 경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대통령 공보 비서관, 세계 일보 사장, 경희대 교수 역임. 초기에는 고요한 서정과 냉철한 지성으로 민족 의식을 노래한 것이 많았으나 그 후로는 여유 있는 인생의 정취를 담았다. 말기의 시에는 사회 비평적 의식과 근원에서 향수가 짓들어 있다. 나무 널찍한 마당도 아닌데 남쪽 한귀퉁이에 파초 한 그루, 단풍 한 그루, 무궁화 한 그루와 풀 몇 포기가 살고 있는 조그마한 화단이 있어서 겨울을 지낸 마른 가지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며 풀에는 어서 봄이 되어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마루에 앉아서 외로울 때면 저으기 위로도 받으며 말은 없지만 변함 없는 친구처럼 대한다. 그러니까 나무는 식물이라는 경계선을 넘어서 나에게 친근해진다. 어떤 때에는 머리를 흙 속에 파묻고 땅에 거꾸로 서서 팔을 위로 올리고 하늘에 기도하는 경건한 자세같이 보이기도 하여 일생에 한 번도 경건한 마음을 가져 보지 못한 위인보다도 더 고상해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나무를 창생이라고 느끼는 때도 있다. 창생이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초목에 비유해서 가리키는 말인데, 그 창생이 하도 많고 우글거리기에 억조창생이라고도 한다. 지구상에 인구가 억으로 헤일 만큼 많기도 하지만 아직 조에는 이르지 못한다. 조라면 천 억의 10배다. 처음에 억조창생이라 한 것이 아니라 한자의 과대성을 빌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저 울창한 나무처럼 그렇게 많다는 것을 암시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게 생각될 때 사람과 같이 나무까지 합쳐서 억조창생이라 한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나무를 사람같이 본 적이 많았다. 성황당에 서 있는 나무도 그랬고 단군의 나무처럼 보아 온 박달나무 아래 처음으로 신시가 열렸다 해서 그 때의 박달나무를 신단수라 하여 신성시한 것도 그런 점에서일 것이다. 지금도 시골 같은 데서는 마을에 몇백 년 묵은 노목이 있으면 그 나무에 제도 지내고 치성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서 그런 나무에 불경한 식을 하면 벌을 받을까 두려워서 함부로 도끼질을 못할 뿐 아니라 그 마을의 수호신처럼 어렵게 대한다. 그래서 산에 나무가 무성하면 그 가까이 사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점도 많거니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기도 한다. 나무가 울창한 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신화적인 생존자들 같기도 하다. 이런 데서 산림의 사상이라는 것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신화의 발생이 곧 그것인 것이다. 그러므로 잘사는 나라에는 산에 나무가 울창하고 또 신화나 전설이 많다. 따라서 나무는 인류의 문화에까지도 관련된다. 나무는 주로 산에 산다. 사람의 대부분은 나무처럼 산에 사는 것이 아니고 들에 살지만 그 나라의 인구가 부조리하게 늘어나면 원인이야 따로 있겠지만 간접적으로 산까지 해를 입어 점점 황폐해져서 나무가 자연 그대로 살지 못한다. 사람이 가까이 살면 새나 짐승도 마음놓고 살지 못하지만 나무도 사람 냄새가 풍겨서 그런지 사람 곁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러니까 인구가 많은 나라나 대도시에서는 수목 애호와 애림 사상이 발생하게 되어 대도로나 거리에까지 나무를 심어 자연의 작은 일부나마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한국으로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금수강산으로 유명해서 우리의 머릿속에 전승되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금수강산, 금수강산 한다. 그렇게 아름답던 금수강산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동안에 마음과 정신도 황폐하고 산도 황폐해진 까닭에 국토를 다시 애호하는 정신으로 정부에서 산에 나무심기 운동을 전국에 펴기 시작한 것이 식목일의 제정인 것이다. 그뿐 아니라 산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입산금지까지 강력히 실시하고 있으나 식목일이 있어 20여 년이 되건만 산은 녹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통일하겠다는 자각과 결심에 얼마나한 실천력이 우리에게 있을까.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소원의 시한을 정하라 대부분 사람들은 집을 살 때, 우선 원하는 기준을 생각하고 적당한 집을 찾아내지 못할 때 부동산을 찾는다. 그것이 전통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비전통적이었다. 1990년 초반에 우리는 사업을 본궤도에 올려놓으려고 바삐 뛰어다녔기 때문에 집을 장만할 여력과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내 아내 테레는 2년 동안 취미로 신문의 주택 매매 특집판인 '선데이 홈즈'를 정독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좋은 집을 갖게 될 거예요.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술술 풀릴 거예요. 너무 잘 풀려서 현실이 아니라 놀라운 기적처럼 보일 거예요. 나는 그런 예감이 들어요." 그리고 1993년 신년 첫날에 '올해의 목표책'을 만들면서, 우리는 그해에 꿈의 저택 장만을 포함시켰다. 학생과 개업 변호사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명료한 목표를 세우듯, 우리는 '집 사냥'에 창조적으로 접근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 만남 순간부터 상대의 자질에 대해서 꼼꼼하고 자세하게 의견을 교환해왔고 그 바탕 위에서 세워진 후 우리의 목표설정이 효율적임을 확인했었다. 우리는 여러 해 동안 이상적인 저택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리고 수 많은 토론과 절충을 통하여 기준을 세우고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의 이상적인 저택을 다음과 같았다. 방 4개와 목욕탕 2개를 갖추고 치장 벽토와 아치형 천장으로 된 개방형 구조에 벽난로와 천장 선풍기가 설치되고 카페트와 세라믹 타일이 발라졌으며 창문이 많고 두 대의 차가 들어가는 차고가 딸린 대지 600명 정도의 2층 저택일 것, 그리고 친절한 이웃과 캘리포니아 헌팅론 해변과 접한, 교통 조건이좋은 곳. 그리고 우리는 '올해의 목표책'에 우리의 소망을 대변하는 칼라 사진을 오려 붙였다.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표어를 쓰고 각각의 표어 아래에 어울리는 사진을 달고 만기 시한을 1993년 7월 31일 오후 5시로 설정했다. 그 작업의 완료와 동시에, 우리는 행동에 나서서 소망을 성취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는 '목표책'을 자주 봤고, 나는 테레의 '선데이 홈즈' 정독 습관에 동참했다. 처음에 우리는 부동산 업자의 도움을 받아 세 군데를 돌아봤다...... 하지만 꿈의 저택은 나타나지 않았다. 테레는 계속 말했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서로를 알아봤던 것처럼 그 집을 알아보게 될 거예요." 흥분 반, 격분 반의 다섯 달을 보낸 후에 우리는 진행 과정을 재평가했다. 당시 우리는 오디오 카세트를 만드는 계획으로 눈코 뜰새없이 바빴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난 할 만큼 했어. 이제 사람들이 우리를 찾게 합시다. 신문에 '집을 구함, 매입자 신용 확실'과 같은 광고를 내는 거요." 우리는 광고에 응답하는 네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 첫번째 전화가 바로 '그 집'이었다. 우리가 집을 보러 갔을 때, 심장은 약간 빨리 뛰었다. 테레의 눈이 빛났다. 그 집은 600평이었고, 아름다웠으며, 천장의 선풍기를 제외하고 우리의 모든 조건과 들어맞았다. 근사한 전망, 치장 벽토로 마감한 뒤 끝, 타일로 발라진 크리스탈 같은 수영장 등, 우리의 뇌리를 스친 첫 번째 생각은 집값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능력을 초과할 거야. 우리는 이 집을 살 수 없을 거야." 우리는 주인과 집값을 흥정한 다음에 그 곳을 떠나 생각해 봤다. 여전히 무리한 가격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 집주인이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말하기를, 그 집이 우리의 것이 되어야 할 것 같다며 집값을 시세보다 낮춰 줬다. 그 가격은 우리의 예산과 일치했다. 그날은 1993년 7월 9일 오후 5시였다. 우리의 꿈의 저택이 우리 것이 되었다! 너무 쉽게! 정말 사실 같지 않았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요청했던 꿈의 저택에 살고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집 천장에는 선풍기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명료하고 꼼꼼한 목표 설정의 경이적인 힘을 존중하고, 우리의 의지에 세상이 회전했음을 알 수 있다. 여전히 우리는 분명하고 조심스럽게 요청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말 현실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Board 추천글 2022.09.09 風文 R 1366
맞춤법을 없애자 그동안 어문 규범은 근대 국가 성립 과정에서 말과 글에 일정한 질서와 공통성을 부여해주었다. 이제 그 역할을 다했으니 놓아주자. 근대의 성과를 디딤돌 삼아 한 단계 올라서려면, 성문화된 맞춤법, 표준어 규정을 없애야 한다. 어문 규범을 없앤다고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 어문 규범은 이미 뿌리내렸다. 올바르게 철자를 쓰라는 요구는 이제 문명인의 ‘최소’ 기준이자 사회적 장치다. 학교 교육, 다양한 미디어 환경, 공공언어 영역은 언어의 공통성을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좋은 점은 많다. 우리는 늘 판결을 기다린다. “‘어쭙잖다’는 맞고 ‘어줍잖다’는 틀린다”는 식. 반면, 영어에서 ‘요구르트’를 ‘yogurt’, ‘yoghurt’, ‘yoghourt’로 쓰지만 큰 문제가 안 된다. 어문 규범을 없애면 다양한 철자가 공존하게 된다. ‘마르크스’와 ‘맑스’, ‘도스토옙스키’와 ‘도스또예프스끼’를 보고 ‘이렇게도 쓰나 보군’ 하며 넘어갈 수 있다. 사회적 분노 지수를 낮추고 다양성에 대한 포용력이 생긴다. 불문율이 언어의 본질에 맞는다. 말에는 사회성과 함께 역사성이 뒤엉켜 있다. 그래서 늘 애매하다. 강조점에 따라, ‘닦달’을 쓸 수도, ‘닥달’을 쓸 수도 있다. 말에 대한 의견 불일치의 유지와 공존이야말로 말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한다. 야구에서 ‘9회에 10점 이상 이기고 있는 팀은 도루를 하지 않는다’고 법으로 정해놓았다면 얼마나 재미없나. 성문법을 없애야 지역, 사람, 시대에 대한 관심이 살아난다. 말의 민주화와 사회적 역량 강화는 성문법의 폐지에서 시작된다. 꿈같은 얘기다. 맞춤법을 없애자 2 성문화된 맞춤법을 없애자고 했더니 말의 질서를 망가뜨리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구구단을 다 외웠으면 벽에 붙여놓은 구구단표를 떼어내야 한다. 현대적 말글살이를 위해 한걸음만 내딛자. 성문화된 규범이 없어도 표기의 질서는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성문법이 없는 절대다수 국가가 이를 보여준다. 한글 맞춤법은 공통어의 형성이라는 근대 민족국가 건설의 과제와 일본 제국주의의 언어말살 정책에 맞서 민족 정체성의 확립이라는 과제가 겹친 시기에 제정되었다. 변변한 사전도 없고 합의된 표기 방법도 없던 상황에서 이룬 커다란 성취다. 현행 맞춤법의 대원칙은 ‘(1)표준어를 (2)소리대로 적되 (3)어법에 맞도록’ 쓴다는 것이다. ‘소리대로 적되 어법에 맞도록’이라는 원칙은 상황에 따라 달리 적용되어 우리를 괴롭히지만, 다른 표기 방안보다 여러모로 낫다. ‘갓흔’(같은), ‘바닷다’(받았다)처럼 소리 나는 대로 적자던 조선총독부의 ‘언문철자법’(1912)이나 이승만의 ‘한글 간소화 방안’(1954)에 비하면 한국어의 특성을 합리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그 결과 맞춤법은 한국어를 표기하는 독보적 원리로 정착되었다. 문화적 무의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공적 영역을 유지하기 위한 실천적 습관(아비투스)이 되었다. 다음 세대에서도 유지될 것이다. 즉, 역사성과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러니 겁내지 말자. ‘꼿밧에 안자 잇는 옵바’(꽃밭에 앉아 있는 오빠)라 쓴 책이 팔리겠는가. 문제는 ‘표준어’다. 맞춤법을 없애자는 주장은 결국 ‘표준어’를 없애자는 것이다.(다음 주에 이어서)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