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밝은 마음, 밝은 말씨 겨울의 주일 오후, 나의 자그만 방에서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밝은 햇빛을 온몸에 받고 앉아 있으면 행복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어둡고 그늘진 지하의 방에 머물다가 얼마 전부터 햇볕이 잘 드는 방으로 옮겨 오니 나의 마음까지도 밝고 따스해지는 듯 기쁘고, 전에는 그저 무심히 받아 온 한 줌의 햇볕, 한 줄기의 햇살도 예사롭지 않은 큰 축복으로 여겨 집니다. 한 줄기의 따스한 햇살이 어둠을 밝게 해주고 추위를 녹여 주듯이 한마디의 따스한 햇살이 어둠을 밝게 해주고 추위를 녹여 주듯이 한마디의 따스한 말이 마음의 스산한 어둠을 밝혀 주고 고독의 추위를 녹여 준다는 사실을 오늘도 새롭게 기억하면서 또 한 번의 새해가 내게 내미는 하얀 종이 위에 나는 `밝은 마음, 밝은 말씨`라고 적어 봅니다. 요즘 내가 가장 부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밝은 표정, 밝은 말씨로 옆 사람까지도 밝은 분위기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때 한결같이 밝은 음성으로 정성스럽고 친절한 말씨를 쓰는 몇 사람의 친지를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그가 몹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이쪽에서 훤히 알고 있는데도 여전히 밝고 고운 말씨를 듣게 되면 무슨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느냐고 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말은 마치 노래와 같은 울림으로 하루의 삶에 즐거움과 활기를 더해 주고 맑고 향기로운 여운으로 오래 기억됩니다. 상대가 비록 마음에 안 드는 말로 자신을 성가시게 할 때조차도 그라 무안하지 않도록 적당히 맞장구치며 성실한 인내를 다하는 이들을 보면 참으로 존경스럽습니다. 자기 자신의 기분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을 먼저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랑의 마음이 느껴지는 말씨, 이기심과는 거리가 먼 인정 가득한 말씨는 우리에게 언제나 감동을 줍니다. 자기가 속상하고 우울하고 화가 났다는 것을 핑계로 우리는 얼마나 자주 퉁명스럽고 불친절한 말씨로 주위의 사람들까지도 우울하고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지 모릅니다. 또한 다른 이들에게 충고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냉랭하고 모진 말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곤 하는지 이러한 잘못을 거듭해온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금방 후회할 줄 알면서도 생각 없이 말을 함부로 내뱉은 날은 내내 불안하고 잠자리도 편치 않음을 나는 여러 차례 경험하였습니다. 뜻 깊고 진지한 의미의 언어라기보다는 가볍고 충동적인 지껄임과 경박한 말놀음이 더 많이 난무하는 듯한 요즘 시대를 살아오면서 참으로 마음을 정화시켜 줄 고운 말, 밝은 말, 참된 말이 그리워집니다. 겉으로 긍정적인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가시가 숨어 있거나 교묘한 위선의 그늘이 느껴지는 이중적이고 복잡한 말이 아닌 단순하고 투명한 말씨, 뒤가 없는 깨끗한 말씨를 듣고 싶습니다. 하느님 안에 우리가 어린이처럼 맑고 밝은 마음, 고운 마음을 지니며 살려고 노력한다면 매일 쓰는 말씨 또한 조금씩 더 맑고 밝고 고와지리라 믿습니다. 새해를 맞아 내가 늘 사랑의 빚을 지고 사는 친지들에게 자그만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어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한 줄기 햇살이 가만히 속삭여 줍니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값진 선물보다 더 낫지 않느냐? (집회서 18:17).` 잎사귀 명상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잎사귀가 보인다 잎 가장자리 모양도 잎맥의 모양도 꽃보다 아름다운 시가 되어 살아온다 둥글게 길쭉하게 뾰족하게 넓적하게 내가 사귄사람들의 서로 다른 얼굴이 나무 위에서 웃고 있다 마주나기잎 어긋나기잎 돌려나기잎 무리지어나기잎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운명이 삶의 나무 위에 무성하다 - 나의 시 `잎사귀 명상` 어느 날 나는 유심히 창 밖의 나뭇잎들을 바라보다가 이런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우리 수녀원의 어느 수녀님이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이 아닌 나뭇잎들을 작은 화병에 꽂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본 일이 있습니다. 얼마 전엔 내 옛 친구의 집을 방문했더니 어떤 화가의 여러 종류의 나뭇잎만을 소재로 한 그림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어찌나 아름답던지 꼭 갖고 싶다는 말을 하려다 괜한 욕심인 듯싶어서 접어 두면서 방학숙제로 동생과 함께 열심히 여러 가지 나뭇잎들을 채집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즐겁게 떠올려 보았습니다. 소나무, 참나무, 미루나무, 느티나무, 오동나무, 은행나무 등등, 나무들의 종류는 참 많기도 하고 흩잎, 겹잎, 마주나기잎 등 잎사귀의 종류도 많으며 윈형, 선형, 피침형, 마름모형 등 잎사귀의 모양 또한 매우 다양합니다. 우리가 나무들을 전체적으로 감상하거나 그 꽃과 열매에 눈길이 가긴 쉬워도 나무에 달린 잎사귀 자체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일은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어 꽃도 열매도 다 떠나 보낸 뒤의 나무 위에서 바람에 한들대는 나뭇잎들의 모습은 쓸쓸하지만 아름답게 보입니다. 고운 낙엽 한 장을 주워 책갈피에 끼우는 마음도 문득, 잊고 있던 잎사귀에 대한 애정과 떠나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길을 가다 보면 어쩌면 사람들의 모습이 저토록 다를까? 새삼 놀라게 되는 적이 있고, 공동체 안에서 살다 보면 함께 사는 이들의 너무 다른 성격과 기질에 거듭 놀라고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가까운 가족, 친지, 이웃들을 살펴봐도 글들이 걷는 삶의 길, 삶의 태도 역시 얼마나 다양한지 모릅니다. 누구나 한 번쯤 삶의 시작과 끝을 생각해 보는 가을. 어느 계절보다 가을을 사랑하는 나는 오늘 아침, 성당 유리창으로 비쳐 오는 상록수들의 푸른 그림자에 내 마을을 포개면서 문득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라는 나무뿌리에서 함께 그러나 서로 다르게 피어나 노래하고 기도하는 초록의 잎사귀들로 여겨졌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2.09.20 風文 R 506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낙엽을 태우면서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거의 매일같이 뜰의 낙엽을 긁어모으지 않으면 안된다. 날마다 하는 일이언만, 낙엽은 어느덧 날으고 떨어져서 또다시 쌓이는 것이다. 낙엽이란 참으로 이 세상의 사람의 수효보다도 많은가보다. 30여 평에 차지 못하는 뜰이언만, 날마다의 시중이 조련치 않다. 벚나무 능금나무... 제일 귀찮은 것이 벽의 담쟁이다. 담쟁이란 여름 한철 벽을 온통 둘러싸고 지붕과 연돌의 붉은 빛만 남기고 집 안을 통째로 초록의 세상으로 변해 줄 때가 아름다운 것이지, 잎을 다 떨어뜨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벽에 메마른 줄기를 그물같이 둘러칠 때쯤에는 벌써 다시 지릅떠 볼 값조차 없는 것이다. 귀치 않은 것이 그 낙엽이다. 가령 벚나무 잎같이 신선하게 단풍이 드는 것도 아니요, 처음부터 칙칙한 색으로 물들어 재치 없는 그 넓은 잎이 지름길 위에 떨어져 비라도 맞고 나면 지저분하게 흙 속에 묻혀지는 까닭에 아무래도 날아 떨어지는 쪽쪽 그 뒷시중을 해야 된다. 벚나무 아래에 긁어모은 낙엽의 산더미를 모으고 불을 붙이면 속의 것부터 푸슥푸슥 타기 시작해서 가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람이나 없는 날이면 그 연기가 얕게 드리워서 어느덧 뜰 안에 가득히 담겨진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따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연기는 몸에 배서 어느 결엔지 옷자락과 손등에서도 냄새가 나게 된다. 나는 그 냄새를 한없이 사랑하면서 즐거운 생활감에 잠겨서는 새삼스럽게 생활의 제목을 진귀한 것으로 머릿속에 떠올린다. 음영과 윤택과 색채가 빈곤해지고 초록이 전혀 그 자취를 감추어 버린 꿈을 잃은 헌출한 뜰 복판에 서서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가난한 벌거숭이의 뜰은 벌써 꿈을 메우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탓일까. 화려한 초록의 기억은 참으로 멀리 까마득하게 사라져 버렸다. 벌써 추억에 잠기고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시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게 파고 다 타 버린 낙엽의 재를 - 죽어 버린 꿈의 시체를 - 땅 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에 없이 손수 목욕물을 긷고 혼자 불을 지피게 되는 것도 물론 이런 감격에서부터이다. 호스로 목욕통에 물을 대는 것도 즐겁거니와, 고생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조그만 아궁이로 나무를 태우는 것도 기쁘다. 어두컴컴한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서 새빨갛게 피어오르는 불꽃을 어린아이의 감동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하고 새빨갛게 타오르는 불은 그 무슨 신성하고 신령스런 물건 같다. 얼굴을 붉게 태우면서 긴장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내 꼴은 흡사 그 귀중한 선물을 프로메테우스에게서 막 받았을 때의 그 태고적 원시의 그것과 같을는지 모른다. 새삼스럽게 마음 속으로 불의 덕을 찬미하면서 신화 속 영웅에게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좀 있으면 목욕실에는 자욱하게 김이 오른다. 안개 깊은 바다의 복판에 잠겼다는 듯이 동화의 감정으로 마음을 장식하면서 목욕물 속에 전신을 깊숙이 잠글 때 바로 천국에 있는 듯한 느낌이 난다. 지상 천국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늘 들어가는 집 안의 목욕실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 사람은 물에서 나서 결국 물 속에서 천국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 물과 불과 - 이 두 가지 속에 생활은 요약된다. 시절의 의욕이 가장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이 두 가지에 있어서다. 어느 시절이나 다 같은 것이기는 하나, 가을부터의 절기가 가장 생활적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 두 가지의 원소의 즐거운 인상 위에 서기 때문이다. 난로는 새빨갛게 타야 하고, 화로의 숯불은 이글이글 피어야 하고 주전자의 물은 펄펄 끓어야 된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낱을 찧어 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그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 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색전등도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 볼까 하고 계획도 해 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 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 책상 앞에 붙인 채 별일 없으면서도 쉴새없이 궁싯거리고 생각하고 괴로워하고 하면서, 생활의 일이라면 촌음을 아끼고 가령 뜰을 정리하는 것도 소비적이니 비생산적이니 하고 경시하던 것이, 도리어 그런 생활적 사사에 창조적, 생산적인 뜻을 발견하게 된 것은 대체 무슨 까닭일까. 시절의 탓일까. 깊어가는 가을이, 벌거숭이의 뜰이 한층 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탓일까.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당당하게 요청하라 - 마이클 제프리 내가 지그 지글러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내 저서 <미국의 위대한 연사들>을 위한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그들의 첫 반응은 이랬다. "안됩니다, 그분은 너무 바빠요." 나는 대답했다. "미국의 가장 위대한 연사들이라는 제목의 책에 지그 지글러가 빠진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나는 그런 일을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분에게 제가 전화를 드렸다는 말을 전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태도였다. 나는 거절을 대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가 내 작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확신에 찬 입지를 취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승낙을 받아냈다. 마이클 헤세 내 치료사가 권했던 '요청 연습'이 또 한가지 있다. 민속 요리점에 가서 엉뚱한 음식을 아주 진지하게 주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멕시코 식당에 가서 프투치니 알프레도(이탈리아 음식)를 주문하거나,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말했다. "치즈를 얹은 쇠고기 브리토(멕시코 요리)를 주세요." 그리고 나는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내가 확신을 갖고 주문하자, 웨이트리스는 내 어리석은 실수를 지적하는 대신 나의 현실로 끌려 들어 왔다. 나는 정말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브리토를 주문했다. 웨이트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가서 확인해볼께요." 그녀는 브리토가 가능한지 주방으로 물으러 갔다. 그리고 돌아와서 그런 요리를 갖고 있지 않다며 사과했다. 내가 확신을 갖고 주문했기 때문에 그녀는 내 현실에 몰입한 것이다. 심지어 엉뚱한 주문을 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원하고 있다, 요청하라! 당신이 앞으로 무엇인가를 요청할 사람이 당신이 요청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상상해보라. 예를 들어보자. 그들이 다른 이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곧 심장마비로 죽게 되리라는 통보를 병원에서 지금 막 듣고 왔다고 상상하라. 그들은 의자에 앉아서 생각중이다. "내가 어떻게 다른 이에게 봉사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순간, 당신이 그곳에 나타나서 말한다. "나는 이번 주에 아파트에서 가구 전부를 옮겨야 해. 그래서 소형트럭을 빌려주고 이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이번 주 토요일에 나를 도와주겠니?" 그들은 그런 요청을 열렬하게 기다려 왔고, 당신을 그들 문제의 해결책으로 환영할 것을 상상하라.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요청해 줘서 고마워! 나는 봉사할 방법을 찾고 있었어." 이 책을 위하여 사람들과 인터뷰를 했을 때, 우리가 반복해서 들었던 반응은 다음과 같다. "내가 당신에게 요청한 영역을 연구하는데 도와 드릴 기회를 줘서 고맙습니다. 나는 이 인터뷰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라. 오히려 우리가 그들과의 인터뷰로 돈을 벌고, 명성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책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는 흥분에 취했던 것이다.
Board 추천글 2022.09.20 風文 R 1471
1일1농 합시다 마을 꼬맹이들이 초승달을 쳐다보며 왜 저렇게 생겼냐 묻는다. “하나님이 쓰는 물잔이라 목이 마르면 물을 부어 마신다”고 했다. “정말요?”(이게 끝이면 좋으련만, 엄마한테 달려가 ‘엄마! 하나님이 초승달로 물을 따라 마신대’라며 일러바친다. 헉, 잽싸게 피신.) 인간의 본성 중에서 좋은 게 하나 있다. 뭔가를 ‘잘 못하는 능력’이다. 잘할 수 있는데도, 잘 못하는 능력. 가장 빠른 길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돌아 돌아 유유자적하는 능력. 방탄소년단 수준의 춤 실력이 있지만 흥을 돋우려고 막춤을 추고, 더 먹을 수 있지만 앞사람 먹으라고 젓가락질을 멈춘다. 당신도 목발 짚은 사람이 있으면 앞질러 가기가 미안해 걸음을 늦출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자신의 능력을 덜 발휘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한다. 새들은 최선을 다해 울고, 고양이는 있는 힘껏 쥐를 잡는다. 너나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회는 야수사회다. 가진 능력보다 잘 못하게 태어났음을 보여주는 증표가 농담이다. 농담은 심각한 말의 자투리이거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간식이 아니다. 그 심각함과 진지함 자체가 ‘별것 아님(!)’이라 선언하는 것이다. 허세가 아니다. 외려 가난할수록, 나이 들수록, 난관에 처했을수록, 다른 꿈을 꿀수록 ‘실’없고 ‘속’없는 농담은 힘이 된다. 농담을 잘하려면 엉뚱하면 된다. 관행과 법칙과 질서에 비켜서면 된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마음에 사이공간이 생긴다. 거기서 놀면 된다. 다른 세상은 농담으로 앞당겨진다. 우리의 목표는 능력이 아니라, 웃음이다. 즉, 모두의 행복. 말과 유학생 대학은 사시사철 말과 글이 피어나는 꽃시장이다. 그런데 피지 못한 꽃들이 있다. 외국인 유학생. 그들은 강의실의 섬이다. 그림자처럼 뒷자리에 웅크려 앉아 있다. 말을 건네면 웃고 만다. 뭔가를 참아내고 있는 듯하다. 숙제의 첫 문장은 존댓말인데 두 번째 문장부터는 반말이다. 그러다 갑자기 전문가의 글솜씨로 탈바꿈. 자동번역기를 쓰거나 참고자료를 짜깁기한 것이다. 선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대학원생도 적지 않다. 한국 학생에게 유학생의 의견도 들으면서 생각의 지평을 넓히라고 권하지만, 실패한다. 기죽어 있는 학생에게 ‘괜찮다, 천천히 말하라. 한국어가 서툴 뿐 할 말이 없진 않다’는 격려는 무력하기만 하다. 귀찮거나 피하고 싶다가, 성적 처리 기간만 되면 고마운 존재로 바뀐다. 성적의 바닥을 깔아 준다. 대학교육을 망쳐온 상대평가제의 최대 희생양은 유학생들이다. 유학생에게 ‘B’는 꿈같은 학점이다. 한국 학생이라면 ‘성적산출근거’를 묻는 메일을 선생에게 보낼 텐데. 외국인 유학생은 수년에 걸친 등록금 동결로 쪼들린 대학의 가장 손쉬운 수입원이다. 유학생 유치 전쟁은 한국어 실력에 대한 기준을 더욱 낮추었다. 문턱을 낮춰 일단 가게 안으로 들인 다음, 말이 통하지 않는 ‘호갱’을 이리저리 뜯어내곤 나 몰라라! 대학에서 벌어지는 이 제도화되고 관습화된 차별과 무책임의 기원이 한낱 언어 문제라는 게 부끄럽고 한심하다. 자유이용권을 팔고서는 ‘키가 작으니 놀이기구는 못 탄다. 키 작은 건 너의 책임’이라니. 말 때문에 이등 학생을 만드는 건 염치없다. 뽑았으면 책임도 져라. 말을 가르쳐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복스러운 사람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많은 인사말 중에서도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은 가장 정겹고도 포근한 말이라 생각됩니다. 이말을 설날이 아닌 날에도 자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복이라는 금박이 글자가 찍힌 저고리의 끝동이나 옷고름, 은이나 자개로 복을 새겨 넣은 밥그릇이나 젓가락, 복주머니 등을 보면 괜스레 즐거워지고 행복이 바로 곁에 머무는 듯 설레이곤 했습니다. 어쩌다 누가 자기에게 예기치도 않는 선한 일, 좋은 일을 하면 그 고마운 마음을 "복 받으세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매우 인상적이어서 나도 어른이 되면 꼭 그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적이 많습니다. 복을 생각하면 왠지 늘 뺨이 붉고 동그스름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아마도 나의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총명하고도 통통한 아이들을 보면 즉시 "넌 참 복스럽게 생겼구나"라고 하는 말을 자주 들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도 그애들처럼 좀 복스럽게 생겼으면 복을 많이 받을텐데...`하고 내내 거울을 들여다보며 부러워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 수녀원에도 복자, 복순, 복희, 복련, 순복, 등의 이름을 지닌 이들이 많은데 그들은 지금도 복스럽게 생겼지만 어려서의 귀여운 모습들을 떠올리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장수, 재물, 자손, 풍년, 나라의 안녕과 질서, 부부간의 해로, 우애, 화목, 기쁨, 평화, 사람, 좋은 만남 등등 그 무엇을 복으로 여기든지 간에 복은 그 자체가 이미 생명 지향적인 것이며 좋은 것, 아름다운 것, 선한 것, 갖추어진 것을 지니고 싶어하는 인간의 솔직한 꿈이며 희망이라 여겨집니다. 어느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인간은 예로부터 어떤 신령한 힘에 의지하여 기도하며 마음으로 복을 빌어 왔습니다. 이런 마음을 `기복신앙`이라 하여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이 자기 보다 더 높고, 위대하고, 능력 있다고 생각되는 누군가에게 가장 겸허하고 진실되게 복을 비는 것 자체는 곧 자기의 유한성을 인식한다는 뜻도 되며 매우 아름답고따뜻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새해엔 우리 모두 이기적으로 자신의 복을 구하고 챙기는 일에만 연연하지 말고, 우리 이웃과 나라와 세계를 위해서도 복을 구할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지니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자꾸 새로운 복을 달라고 조르기 전에 이미 받은 복을 잘 키우고 닦아서 보물로 만드는 노력과 지혜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런 노력 없이 요행을 바라거나 안일하게 복을 구하는 태도를 지양하고, 우리 일상의 삶 안에서 꾸준히 복을 짓는 덕스러운 나날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아름다운 의무라고 여겨집니다. 결국은 덕스러운 삶이 복스러운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새롭게 해보면서, 우리 각자는 잠시라도 이웃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작은 `복덕방`의 역할을 하는 복된 새해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한 해를 맞아 우리 모두 외모 못지않게 내면이 복스러운 사람이 되길 함께 기원하면서 나는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의 소망을 하늘에 띄워 보내고 싶습니다. 1.하느님과 이웃을 향해 더욱 열려 있는 사랑과 기도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2.일상의 소임에서 가꾸어 가는 잔잔한 기쁨과 감사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3.타인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이해와 용서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4.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잘난 체하지 않는 온유와 겸손으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5.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로 복스러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Board 삶 속 글 2022.09.19 風文 R 544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이효석편" 이효석(1907__1942) 소설가. 호는 가산. 강원도 평창 출생. 경성 제대 법문학부 졸업. 숭실 전문 학교 교수 역임. 한국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단편 소설을 썼던 이효석은 수필에도 여러 작품을 남겼다. 간결체 문장의 전형을 볼 수 있다. 향연 일각이 천금의 값이 간다는 봄날 저녁, 거리의 향연에 감은 옛날 아가톤의 집 축하연에 모여 가는 기쁨보다 못할 것은 없다. 모이는 사람들이 반드시 희랍 시대의 철학자들일 필요는 없는 것이나, 그러나 일단 가서 모여든 면면에 접하였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80여 명의 소위 거리의 지명의 사를 망라한 대연이었으니 80여 명에서 겨우 80분지 34명밖에는 구면이 없음이다. 60옹 50객 40줄 30대의 각 연대에 뻗쳤고, 종교가, 교육가, 법률가, 도규가, 조고가들이 쓸어 왔으니 희랍 시대의 초대객보다는 확실히 색채인 셈이다. 물론 그들의 지혜가 아가톤의 집에 모였던 옛 사람들에게 미치는지 못 미치는지 그들에게 비겨 자라격에나 갈는지 못 갈는지는 별문제다. 그들에 의해서 반드시 거리가 운전된다고도 할 수 없으나 그 얼굴들이 별로 신통할 것은 없는 것이요, 어떻든 이것도 저것 같고 저것도 이것 같아서 아물아물 그 수가 퍽도 많은 것이다. 도회의원도 많거니와 의사도 퍽은 많다. 인사 받은 몇 사람을 구면의 분에게 조용히 물어 볼 때 "그 사람은 상당한 지식인이오." "그 사람은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이오." 대답하고는 좌석을 군데군데 짚어서 설명한다. "저건 돈푼이나 있죠." "저건 고리 대금 업자요." "저건 술주정꾼이오..." 잡동사니다. 오월동주이기는 하나 잔치가 되었을 때에는 준연한 식욕으로 향해서 화기 준연하게 통일되었고 술이 돌았을 때에는 운명의 배멀미에 취한 듯 흐느적거리며 당 안이 낭자하였다. 10여 명의 명기가 틈틈에 끼어서 술시중뿐만이 아니라 이야기 사중에 여념이 없다. 청초한 맑은 자태들이 점홍이 아니라 점백의 정취를 나타냈다. 사람은 항상 무슨 말들이 그렇게 많을까. 아가톤의 집 연회에서는 연애를 논의하고 사랑의 원리를 이야기들 하였다. 잔치 마당에서는 그것이 가장 격에 맞는지도 모른다. 나도 이 날 밤의 한 구석의 회화를 비역해 본다. 연애론이 아니고 치정론이라면 결국 현대인의 그만큼 고대의 희랍인보다 타락했다는 증명뿐이요 내 허물은 아닌 것이다. "요새 까딱 안 오실 젠 신문사 일이 바쁜신 모양이죠?" "바빠서 안 가는 줄 아나?" "그럼 아직두 그걸 노여워하고 계시나요? 내 곡절을 얘기한다 하면서 못 했군요. 오늘 밤에는 기어이 얘기해 드리죠." "발명은 왜, 뻔히 아는 노릇을 이제 새삼스럽게 발명할 테야?" "세상 소문이란 대개 사실과는 다르거든요. 말이란 양편 말 다 들어야지, 왼편 말만 가지군 아나요." "암만 그래 보지, 곧이듣나." "그 날 밤같이 우리집까지 오셨던 건 아시죠. 얘기는 게서부터 시작되는데 선생이 가신 뒤 군이 자꾸 쉬구만 가겠다는군요. 손님 대접이라 하는 수 없이 이불을 펴 주구 전 어머니방에 가 잤죠. 그뿐이에요." "그 군의 말과 다르거든." "그건 그렇죠. 아침에 일어나 그 방에 갔을 때 노여노여하면서 내 겨드랑이를 들추겠지요. 변태인가 봐요. 보이는 건 그뿐이에요." "흥 그걸루 설명이 다 됐다구 생각하나." "그럼요. 그 이상 아무것두 없는 걸 어떡해요. 그 뒤에 다시 시골서 왔을 때엔 아침부터 허덕거리고 와선 보구 싶어 왔다는구먼요. 문제는 그 날 밤인데 여기저기 불리면서 늦도록 놀다가 좋은 사람과 같이 돌아가서 자리에 누웠죠..." "요것 봐, 새롱새롱 말 막 한다." "이렇게 된 바에야 막 하지 않구 어떡해요. 그래두 믿지 않으시면서. 대문 거는 것 깜빡 잊었던 것이 불찰이었죠. 별안간 문 소리와 발 소리가 나더니 주추 앞에서 부르는 목소리가 바로 그이의 목소리겠지요. 벌써 자리에 누웠구 하는 수 있어야죠. 불을 탁 끄구 시침을 떼면서 몸이 고달프니 가라구만 졸랐죠. 들어 줘야 말이죠. 이러쿵저러쿵 실랑이를 치던 끝에 기어이 마루에 뛰어올라 문을 열라는군요. 그래서 결국 터지구 말았죠. 방 안의 군이 이불을 홱 차구 일어나더니 고래 같은 소리루 누구냐구 고함을 쳤던 거죠. 그 한 마디에 밖이 별안간 조용해지구 그뿐이었어요. 생각하면 미안두 하구 부끄럽기두 하구" "천연스럽게 말하는 품이 영웅인가 요물인가?" "자, 이젠 오해 다 풀어 주세요... 어쩌나 사람들이 벌써 어느새 이렇게 헤졌네. 이 길루 우리집에 가시지 않겠어요? 오래간만에..." "...글쎄 가 볼까. 요것봐. 웃긴 왜 웃어." 사내라는 게 다 만만하단 말인가. 나도 실상 사내면서도 사내 맘 모르겠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원하는 결과를 상상하며 요청하라 - 켄 로스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프로젝트는 UCLA의 앤디 바나코우스키와 일한 것이다. 앤디는 전미 배구대회에서 여섯 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여성 배구 코치이다. 앤디는 말했다. "당신의 프로그램은 정말 탁월합니다. 미국 여자 배구팀이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지만, 코치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오만해요.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USC의 척 에브를 만나 보세요." 그래서 나는 USC의 척 에브를 만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은 멋진 프로그램이에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아십니까? 당신은 아리에 셀링거를 만나야 해요.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대단히 오만해요. 절대로 당신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겁니다."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잠깐 기다려. 뭔가 잘못되었어." 이것은 내가 가르쳐 왔던 모든 규칙에 위배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아리에 셀링거가 열렬하게 내 전화를 기다리고, 나와의 만남을 학수고대하는 이미지를 창조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리에 셀링거가 절망적으로 나를 필요로 하고 전화기 옆에서 내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상상함으로써 내 자신을 '긍정적인 입지'에 몰아넣었다. 그러자, 전화하기가 쉬워졌다. 무엇보다, 그가 내 전화를 열렬하게 기다리잖는가. 마음속으로 나는 아리에 셀링거가 전화기 옆에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켄, 제발 전화해 주세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팀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저는 켄 로스입니다. 아리에 셀링거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전화를 받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누구라구요?" "켄 로스입니다. 나는 USC의 척 에브와 UCLA의 앤디 바나코우스키를 통하여 연락드리는 겁니다. 두 사람 모두 당신이 내 프로그램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것이라더군요." 갑자기 전화선을 통하여 투박한 이스라엘 억양이 들려 왔다. 내가 내 프로그램을 설명하자,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말했다. "우리는 데니스 웨이틀리의 것을 이용하고 있어요. 댁은 데니스 웨이틀리를 잘 아십니까?" "아, 그럼요. 데니스 웨이틀리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프로그램은 훌륭하지요. 하지만 당신이 이번에 내 것을 보지 않는다면, 가장 탁월한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아실 기회를 놓칠 겁니다." "내일 세 시가 어떻겠습니까?" 나는 전화를 끊고 공중으로 깡충 뛰어올랐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만나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를 만나러 갔고 내 프로그램을 보여줬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아무 연락이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너무 큰 도박을 걸었고, 그들이 내 것에 관심이 없다고 추측했다. 그 다음에 전화가 왔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만장일치로 당신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결정했어요!" 신념을 갖고 요청하라 - 베티 마제티 해치 어느날 아침, 한 젊은 여성이 내 모델 학교에 등록을 신청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그저 그랬다. 그녀는 키가 크고 마르고 깔끔했지만, 그것은 육체적인 미의 전부였다. 그녀의 피부와 머리 모양, 자세와 의상은 문제투성이였다. 나는 친절하고 솔직한 태도로 그녀에게 길 건너편의 비서학교로 가보라고 제안했다. 실용적인 기술을 배우고 고정직을 얻은 다음에 모델 일을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대답했다. "마제테 여사, 당신이 제 입학을 허락해 주신다면, 저는 여사가 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최고의 흑인 모델이 될 거예요." 그녀는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그것을 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즉시 그녀를 받아들였다. 모델 훈련 과정을 미수하고, 피부 문제를 교정하고, 머리형을 바꾸고, 자세와 걸음새를 완벽하게 갖춘 후에 이 새로운 모델은 하나씩 둘씩 일을 따냈다. 그녀는 우아함과 개성을 지닌 모델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패션쇼에서 접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잊혀지지 않는 여성은 정말 내가 본 중에서 최고의 흑인 모델이 되었다.
Board 추천글 2022.09.19 風文 R 1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