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자화상 - 강호인
시간을 탐식해 온 나는 한 마리 벌레였나
단풍 물든 나무 아래 주워 든 잎새 하나
인연의 실밥을 풀어 준
바람 소리 묻혀 있네
질경이 습성이듯 뽑아 올린 네 줄기 꽃대
저마다 꽃 피우고 옹근 열매 맺는 것을
기원의 망루에도 올라
폭죽 같은 별을 보고
내 영혼의 작은 영토 언어의 사원에서
반디 같은 시편들로 간간이 등불 켜고
저 앓는 풍찬노숙의 저자로
빈자(貧者)의 길 나설 땐가
아무렴, 산다는 게 그렇고 그런 게지
여일(餘日)을 하루같이 거울 보듯 닮아 갈
아내여, 그대 눈주름은
마냥 환한 보름달
갈꽃인양 흰물 들어 흩날리는 머리카락
지명(知命)의 꼭지마루 노을 한 짐 부려 놓고
한 잔의 적멸을 받들
두 손 씻을 물 소리 듣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