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송일지(古松一枝) 박 헌 오 마을어귀 둥긋이 고개 숙인 여인이 온몸이 상기된 채 숨소리를 고르는 밤 선비는 갓 벗어놓고 오간 데가 없어라 가지 끝 여린 정이 철없이 솔솔 날고 별들이 둥지 내려 자고 있는 이슬 집 한아름 나이테 속에 기다림이 감긴다. 끊어진 그네에 매달린 그리운 밤 긴 세월 그린 얼굴 황토빛 껍질이 되고 빛 바랜 편지 한 장이 담겨 있는 까치집. 설한풍 안고 사는 마을 밖의 암자 하나 미명에 먹물 찍어 산길을 그려가다 천년의 푸른손으로 해맞이 종을 친다. 안개가 걷히올 제 이슬 터는 하얀 새 긴 목 위 머리 들어 들녘을 내다보면 샛강의 가야금소리 계절을 허물어 가고 옹두리 진 뿌리에 정한수를 떠놓는 이 옛 가지 휘어내려 기와 꽃에 입 맞추고 연화등 언 이마에 켜면 설레는 법열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