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에서 -고영
이 은밀한 자리 미소로운 체온으로
선정(煽情) 보람되어 찾듯 흥겨운 마음 헤다보면
하늘이 비인 것만으로 외롭다지 않는가.
살다보면 외로움은 승화하여 간다지만
발자국 부질 없이 새겨 놓은 풀밭에서
푸른 날 하루해마저 서러워져 오는가.
잔디밭 생명들로 지심(地心) 깉은 햇살 받아
정적의 이 의미를 영혼까지 새겨보면
이 목숨 사랑을 타고 희한하게 열리네.
고영(高英)의 <풀밭에서>를 이 달의 초대시로 추대한다.이 작품은 자연 친화에 대한
순수한 정감을 진지하고도 잔잔한 서정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모처럼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한가로이 교외를 산책하다 보면 산이 푸르러 싱그럽고,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고, 우러러보이는 한르 또한 파랗게 펼쳐 있어
마음은 즐겁기만 하다. 매연에 오염되지 아니한 한 그루의 나무가 가는 길을 멈추게
하고,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도 지나치는 이의 눈길을 끌게 한다.
그리고 그들 사이사이를 누비면서 자기 나름의 영토를 확보하고 있는 풀밭들은 외로
워 보이는 들꽃들을 불러 위로해주기고 하고, 때로는 향기 짙은 바람과 더불어 희롱하
기도 하다가 세속적인 우리를 위해 자리를 베풀어 주기도 한다.
이러한 때 풀밭에 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뒹굴다보면 까닭없이 눈시울이 뜨
거워 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잠시나마 세속적인 것들과 인연을 끊고 자연을 상대로 대화를 나눌 때, 거기에서 비롯되어지는 순수한 감정 때문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은 까닭없이 외로워지거나, 까닭없이 슬퍼지기도 한다. 이 모두가 우리의 감정이 자연가 친해짐으로써 오는 순수의 결과라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