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무렵 베란다에 혼자 나와 있는 늙은 세탁기 반반하게 젖어있던 속내 흔히 드러낸채 바지가랑이를 붙든다 하늘을 호객하다 곁눈질하는 쓸쓸한 웃음은 왼종일 목을 조르던 넥타이를 거머쥐고 나는 걷어붙인 소매 아직 내리지 않은 하루를 밀어넣는다 오늘도 몇번씩 가슴속 서랍문을 열었다 닫아건 깔깔한 자존심은 힘센 물줄기를 풀고 와이셔츠를 벗기고 바지를 벗기고 어디로도 갈수 없는 후줄근한 운동화 두짝도 벗긴다 심한 욕지거리로 불룩거리는 후미진 세상 뒷덜미에 강력세제 스파크를 들이붓는다 갓길로 덮여가든 중심길도 푹담궈 불린다 나는 멀찍이서 달아오르는 저녁노을 한바가지 퍼다넣고 부끄럼으로 남은 속옷도 벗어준다 침대모서리에 널부러져 있는 노상에 서 슬쩍한 붉은 사과도 얼룩이다 찌든꽃을 원하는 아가리 속으로 도시 의 어깨가 가라앉고 나는 오른손 검지로 빠르게 전원 버튼을 누른다 빙그러 미끄러지는 둥근세상 먼저 사거리에서 천식에 시달리던 포플라나무가 돌고 그아래 부어오른 목덜미 덜렁거리는 쫒겨온 비둘기떼가 돈다 날지 못하 는 살찐날개가 부러진다 검은 하늘 검은 빌딩 하수구를 타고 흐르는 평와의 잘린 사지들 그래도 세상은 돈다 눈알이 팽팽 돌아도 구심력의 심장은뛴다 쉿, 잠깐 멈추어서는 지상의 원통 헛된 욕망은토악질을 하고 부글거리며 부풀어오른 거품은 좁은 통로로 빠르게 빠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