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제 바람을 표절할래 잘못 이름 붙여진 뿔새를 표절할래 심심해 건들대는 저 장다리꽃을 표절할래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이 싱싱한 아침 냄새를 표절할래 앙 다문 씨앗의 침묵을 낙엽의 기미를 알아차린 푸른 잎맥의 숨소리를 구르다 멈춘 자리에서부터 썩어드는 자두의 무른 살을 표절할래 그래, 본 적 없는 세상을 향해 달리는 화살의 그림자들을 표절할래 진동용수철처럼 쪼아대는 딱따구리의 격렬한 사랑을 표절할래 허공에 정지한 벌의 생을 떠받치고 선 저 꽃 한 송이가 감당했던 모종의 대 역사와 어둠과 빛의 고비에서 나를 눈뜨게 했던 당신의 새벽 노래를 최초의 목격자가 되어 표절할래 풀리지 않는, 지구라는 슬픔의 매듭을 베껴 쓰는 불굴의 표절작가가 될래 다다다 나무에 구멍을 내듯 자판기를 두드리며 백지의 당신 몸을 표절할래 첫 나무가지처럼 바람 속에 길을 열며 조금은 그렁이는 미래라는 단어를 당신도 나도 하늘도 모르게 전면 표절할래 자 이제부터 전면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