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불타올라도 타지 않는 서가가 있다. 타오르면서도 풀잎 하나 태우지 않는 화염도 있다 나는 저 불꽃의 마음 읽으려고 그렁거리는 차를 몰고 7시간이나 달려왔다 층층 만 권의 책을 쌓아올린 채석강 단애 한때는 사나운 짐승처럼 칼날 튀어나오던 삶이었겠다 그럼에도 벼랑에만 매달려 사는 가마우지새에게만은 둥지를 허락한 여자였겠다 악다구니 쏟으면서, 그게 가난에게 내지르는 주먹질이라는 걸 알았던 것일까 가파를 수록 정 많고 눈물 많은 달동네 노을의 그 지독한 핏빛 아 나는 기껏 몇 권의 습작노트를 불태우고 한 세계를 잃은 적 운 적이 있단 말인가 이제는 저렇게 불타올라도 용암처럼 들끓지 않는 그녀의 삶, 삶의 문장으로 채워진 만 권의 책 오늘은 내가 가마우지새가 되어 그녀의 서가에 한 권 책으로 꽂힌다 미친 힘으로 벼랑 핥는 파도도 바다의 불꽃으로 피어나고 비루한 삶의 풍경에까지 층층 겹겹 한 살림 불의 문장을 새겨 주는 채석강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