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나오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서 쉼보르스카 시집을 꺼낸다 책을 펴서 얼굴을 가리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삼십분만 소리 죽여 울다가 일어설 것이다 루드베키아가 피어있는 간이역 서로 떨어진 꽃잎이 제각각 바라보는 방향으로 이별은 역사의 빈 공터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시들고 있다 누군가 새롭게 만들고 있다 만남을 잃어버린 역사에서 모든 것은 이별의 진행 방향이다 기차가 떠난다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의자에서 일어선다 출구로 나가는 사람들 속에 내가 없어도 아무도 주의하지 않는다 의자 위에는 바람이 시든 장미 다발처럼 놓이고 나는 선로 건너편 루드베키아 꽃밭 속으로…… 시베리아로, 안데스로, 히말라야로, 실크로드로…… 샛노란 꽃잎의 길이 열린다 이 많은 길을 누가 만들었을까 카테리니행 기차는 여덟시에 떠났다네 또 다른 루드베키아 한 송이가 새로 핀다 하나가 아니고 유일한 것도 아니고 이별은 일상이 되고 이제 얼굴을 책으로 가리고 혼자 울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