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편성 및 훈련 기피자 자수기간이라고 쓴 자막이 화면에 나온다 나는 훈련을 기피한 적이 없는데도 괜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어제나 그저께의 일들을 생각해본다 나 같은 놈을 예비해 두어서 무얼 하겠다고 어김없이 예비군 통지서는 또 날아오는가 후줄그레한 개구리옷을 입고 연탄불이나 갈고 있는 나같은 놈을 나는 문득 자수하고 싶다 뭔가를 자수하고 싶다
반성 673
우리 식구를 밖에서 우연히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
밖에서 보면 버스간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에서, 경찰서에서... 연기 피어오르는 동네 쓰레기통 옆에서.
김영승
1959년 인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반성·시」 외 3편의 시를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차에 실려가는 차』 『취객의 꿈』 『아름다운 폐인』 『반성』등이 있다.
김영승의 시를 소개하려면 적어도 2편 이상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길이도 짧고 내용도 사소하기 때문이다. 애걔, 이게 뭐야? 좋은 시라고 소개했다간 그런 민망한 반응이나 듣기 십상이다. 제목도 붙이기 귀찮다는 듯, 아니면 일일이 제목 붙여주기 계면쩍다는 듯 줄창 '반성' 하나로 번호만 매겨가고 있는데, 그 내용이란 게 어제께 예비군 통지서를 받았다는 등 그저께는 길에서 누구를 보았다는 등 수첩 한 구석에 대강 끼적거린 듯한 소소한 신변잡기들이다. 10편을 읽는 데에 3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맛있다. 찡하다. 배부른데도 자꾸 집어먹는 새우깡처럼 계속해서 손이 나간다. 흔한 일상 풍경들에서 '삶'을 잡아채는 순발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김영승의 순발력을 말하려면 '예민하다'보다는 '삐딱하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대개 무료한 백수건달의 눈에는 사물과 현상이 딱 두 가지 잣대, 나하고 관계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으로만 들어오는데, 그 단순무쌍한 외곬수 시선이 깊어지면 뜻밖에 절실한 실감이 만들어진다. 말하자면 그게 김수영 식 소시민의 오만이고 슬픔이고 분노이다. 김영승의 낙서 같은 농담이 김수영의 시니컬과 맞닿는 지점이 거기이다. '우리 식구를 밖에서 우연히 만나면 / 서럽다' 서럽지, 디따 서럽지, 누구 하나 걸리면 막 패주고 싶도록 서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