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있으나 몸을 부려둘 공간이 없다 그들에게는 소비할 공간이 없다 먹고 죽을 공간도 없다 그러니 어떻게 발을 두나 머리를 두나 먹을 입과 담아둘 위장과 배설할 항문을 어디에 두나 똥은 또 어디에 내려놓나 모든 공간을 몰수당했으므로 그들은 존재일 수 없음 그러므로 그들의 시간도 꽃필 수 없음 나프탈린처럼 또는 유령처럼 생으로 졸아들다가 증발한다 그러니 그들의 시간도 튀긴 구정물처럼 길가 담벼락이나 애꿎은 바지자락 같은 곳에 묻어 고갈들 뿐 그 떳떳하던 공간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들은 정말로 그 싱싱한 공간들을 다 먹어치운 것인가 소문처럼 그 착한 공간들을 어디에나 똥 눠 치운 것인가 (그렇다면 마지막에 그것을 한입에 물고 간 건 뉘 집 개?) 마이너스 공간에서 反物質을 소비하며 그들은 있다 아닌 공간의 그들을 긴 공간에서 보면 없다, 떼먹은 공간을 변제하고 그들은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현재는 오직 게워냄에 있다 제 안을 밖으로 뒤집는 데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게운다 제 목구멍을 제 내장을 제 항문을 항문 바깥의 우수마발 장삼이사 돗진갯진을 피눈물을 살육을 마지막으로 게우는 제 입까지를 게운다 구강에서 항문까지 속통의 안팎이 홀딱 뒤집힌 채 그들은 있다, 있음인 체 해본다 한사코 그들은 별의 완성이자 죽음인 블랙홀이다 모든 공간은 몰수되고
우리는 그들의 내장 위에 붙어있다 우리는 그들이 게워낸 공간 위에 다시 게워져 있다 우리는 그들의 항문을 지나 그 다음에 있다
김사인
1955년 충북 보은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1982년 채광석, 홍일선, 김정환 등이 이끈 시 동인지『시와경제』에 참여하면서 시 창작활동을 시작하고, 같은 해『한국문학의 현단계 1』에「지금 이곳에서의 시」를 발표하며 평론활동 시작. 시집으로 『밤에 쓰는 편지』 평론집으로『박상륭 깊이 읽기』등이 있음.
그 언젠가 서울역과 시청역 그리고 종삼 지하철역 등지를 오가다가 한 떼거리 무리지어 소주잔을 들이키고 있던 그 노숙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그들을 우연히 스쳐 지나가던 날 가슴이 울울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누가 저들을 저렇게 방치했나. 모든 가능한 공간, 그 떳떳하던 공간들을 몰수당하고 말하자면 마이너스로 대변되는 공간에서 반물질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그들에 대해 이 시인의 눈길은 측은지심을 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까지 나아간다. 이 시인이 한때는 이들 노숙자들과 함께 살 부비고 그들과 함께 숨쉬고, 슬리퍼 찍찍 끌어가며 살아봤지 않다면 이토록 생생한 시적 육성은 터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오직 게워냄에 있다는 이들의 생존양식에 대한 시적 진술은 그들이 왜 무엇 때문에 인간적 자존을 팽개친 채 동물적 착종을 거듭해야 하는가에 대한 반어적 질문이다. 모든 공간이 몰수되었으나 우리는 그들의 내장 위에 붙어있다는 인식, 그들이 게워낸 공간 위에 우리가 다시 게워져 있으며, 그들의 항문을 지나 그 다음에 우리가 있다는 공동체적 연대 인식은 이 시인이 이 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시대적 증언이자 뼈아픈 통찰이다. 자기를 처절히 게워낸 채 오늘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바로 누구인가? 장삼이사, 돗진갯진, 우수마발, 피눈물과 살육들의 외침, 그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이 밤을 또다시 견뎌내고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