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진 지 스무 해쯤 되어 보이는 대숲에는 삼십대의 상인도 오십대의 품팔이도 들어가 섰습니다. 철모르는 어린이도 섞였습니다. 대숲이 술렁거리더니 일제히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서걱이는 행진의 걸음마다 외마디 외침이 폭발했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귓속으로 파고드는 이 소리는 종로에서 광화문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소리가 부딪친 전방 바리게이트에서는 돌연 총포가 난사되었습니다. 이에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어요.
한 송이 피면 또 한 송이 거품 뿜으며 피고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우르르우르르 무리져 피는 피다가 모두 죽는 대꽃.
최두석 1955년 전남 담양 출생. 서울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1980년 『심상』에 시 「김통정」 등 발표. 시집 '대꽃'(1984), 서사시집 '임진강'(1986), '성에꽃'(1990),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1997) 등 간행. 엮은 책으로 '오장환 전집'(전2권, 1989)이 있으며, 평론집 '리얼리즘의 시정신'과 '시와 리얼리즘'(1996)을 간행했음. <오월시> 동인. 현재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자연 사물의 이치는 때로 사람이 살아가는 원리와 법칙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연 사물의 이치를 통해 사람살이의 지혜와 예지를 터득해 가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 현상의 이면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나무는 어떤 속성을 지닌 나무인가. 인간의 천성이나 품성이 저마다 독특한 차이를 드러내듯 나무들은 저마다 다른 수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다. 또 생을 마감할 때에 가서야 일생 처음으로 꽃을 피운다. 거기에 다른 수종과 달리 집단으로 서식한다. 유연성이 있으나 결코 쉽게 꺾이지 않고 몸을 굽히지 않는다. 이상은 대나무에 대한 현상적 고찰이다. 그렇다면 그 나무의 이면에는 어떤 본질이나 속성이 내재해 있을까. 사람들은 대나무를 흔히 고절의 표상으로 읽는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있는 나무이다. 사람으로 치면 욕망을 비운 자이다. 기차의 열차 칸처럼 많은 마디가 있는데 칸, 칸마다 빼곡히 어둠이 들어차 있다. 이 어둠이야말로 고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욕망이 가득 찬 사람이 지조를 지키며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조를 지킨다는 것은 고독을 견디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우리는 대나무에서 ‘고절’의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또 대나무에서 우리는 역사적 격변기에 있어 민중의 저항 수단인 ‘죽창’을 연상하기도 한다. 왜일까. 평소 대나무는 퉁소나 피리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대바구니나 소쿠리가 되어 곡식을 담는 실용성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나무는 민족의 공동 운명체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될 때 기꺼이 살신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사람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평화 시에는 그럴 수 없이 순한 양으로서 이타적 도구의 삶을 영위하다가도 민족의 운명이 막다른 경지로 내몰리게 되면 무서운 저항의 인물이 되어 위기에서 민족을 구하는 것이다. 과부하에 걸릴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퓨즈의 자기희생이 아니라면 우리는 안심하고 집을 비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대나무와 퓨즈는 전혀 이질적 사물이면서도 서로간에 유사성이 존재하기도 한다. 최두석의 시 <대꽃>은 이처럼 자연 사물에 내재한 현상 너머의 본질이나 속성에서 사람 사는 도리와 이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미학적 형상 언어를 통해 우리에게 제시한 시라고 할 수 있다. 평론가 김준오는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라는 낯익은 설화를 인유의 원천으로 채용한 이 서술시의 제재는 4. 19 혁명이다. 사회 역사적 사건을 다룬 점에서 이 리얼리즘 시는 시인 개인의 자전적 체험을 다룬 주관적 현실성과는 대조적으로 객관적 현실성을 이미 확보한다. 사건의 완결성은 마지막 서술 문장인 “이에 대나무들은 쓰러지며 대꽃을 피웠어요”에서 뚜렷이 환기된다. 과거 시제의 채용뿐만 아니라 또한 일관된 경어체에서 우리는 제재에 대한 시인의 태도가 어떠한 것인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