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사 처음 본 탑이지만 탑은 나를 천년도 넘게 보아온 듯 탑 그림자가 내 등을 닮았습니다
수억 광년 먼 우주의 별들도 어쩌면 등 뒤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석탑 하나 마주하고 오래 서 있자니 나의 등이 수억 광년 달려와 나를 정렬하고 마음을 만납니다
옛사람들은 거울보다 먼저 마음을 비춰보는 돌을 발명하였습니다
▶ 백무산시인 프로필
1955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등이 있으며, 2003년에 실천문학사에서 다섯 번째 시집 『初心』을 펴냈다. 1989년 제1회 이산문학상, 1997년 제12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창림사지에 가본 적이 없지만 백무산 형이 마주한 석탑은 어디선가 본 듯도 합니다. 내가 나를 알면 마침내 ‘돌의 마음’과 수억 광년 거리의 ‘별의 마음’도 알겠지요. 적어도 수백만 년이 흘러야 돌 하나가 태어나고, 누구인가 그 돌을 깎아 천 년의 석탑을 세우며 돌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이승의 삶에 천년을 보태고, 거기에다 다시 수백만 년 돌의 나이를 보태고, 그리하여 수억 년 별의 시간을 얻는 것이지요. 영생이 어디 따로 있겠는지요. 특히 ‘옛사람들은 거울보다 먼저/ 마음을 비춰보는 돌을 발명하였습니다’는 구절이 가슴을 칩니다. 그렇지요. 오래 들여다보면 볼수록 저 돌의 거울은 더욱 더 명징해집니다. 석탑의 가슴에 심장을 포개고 두 눈을 감으면 태고적의 파도소리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걸어다니는 하나씩의 석탑입니다. 석탑이 석탑에게 말을 걸고 악수를 하며 언제 술 한 잔 하자며 안부를 묻습니다. 백무산 형은 참으로 먼 ‘인간의 길’을 돌아와 이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폐사지의 석탑, 천년의 돌에 뜨거운 피가 도는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