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家와 멀리 떨어진 집 한 채 내 적빈의 거처다 파란 동자승 둘, 사미승 하나, 늙은 공양주 보살, 그리고 땡중인 나 눈 내리는 겨울밤이면 삐그덕 삐그덕 절집은 노를 저어 서녘으로 가보는 것이다 아침마다 시주를 나설 때면 절집 식구 모두 산문 앞까지 따라 나오 합장 배웅한다 어둡기 전에 들어오라고 너무 힘들게 혹은 비굴하게 시주받지 말라고 회색 빵모자까지 한 번 다시 씌워주는 것이다 알았다 알았다 함께 합장해주며 바라보는 절집 식구들의 코 큰 신발들 그 위로 눈은 부슬부슬 내리고 동자승 둘은 들판으로 달음질친다 날렵한 팔작 지붕 기와에 흩날리는 눈처럼 동쪽으로 길을 나서보면 흔연한 사람의 피를 만나고 그 너머 눈 속에 갇힌 절집 하나 무럭무럭 김을 피워 올릴지도 모를 일이다
▶ 우대식 시인 프로필
강원도 원주 출생.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늙은 의자에 앉아 바다를 보다』『천년의 시작』
우리 시대의 가장들은 고달프다. 한 가족의 부양을 위해 온몸으로 고투하는 가장들을 보라! 좀처럼 풀릴 줄 모르는 경제 한파가 그들의 어깨를 한없이 무겁게 한다. 가장의 권위가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 먹고 사는 일의 지엄한 논리는 때로 사람살이를 비굴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 소개되고 있는 시 속의 화자와 그의 가족은 참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온정이 살아있어 주목을 끈다. 집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만을 지닌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최후 은신처이고 아늑한 정신의 거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집이 흔들린다는 것은 존재의 전부가 흔들린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밥'처럼 신성한 것이 또 있을까. 그 '밥'을 구하러 사립을 나서는 가장들에게 식구(식구란 무엇인가, 밥을 함께 먹는다는 뜻 아닌가)들이여, 진정에서 우러나는 감사의 손을 흔들자. 자, 그리고 우리 시대의 가장들이여! 어깨를 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집을 나서자! "비굴하게 시주 받지" 말고 정당하게 밥을 구하러 가자. <시인 이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