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나해 멀리멀리 따이한 메밀꽃도 새하얀 내 고향 언덕 고향의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지면 고노이 마을로 달려가던 소년이었다 불란서와의 전쟁통에 자식을 모두 잃고 그날까지 며느리와 손자들과 사시던 고노이 마을의 다 늙은 퍔 할아버지 인생도 나라도 의지하지 못하고 사시던 남지나해 멀리멀리 퍔 할아버지 나는 그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물소도 취하게 만드는 독한 술을 마셨다 그리고 서로 보듬고 월남말로 울었다 내가 마치 한국전쟁의 고아인 것처럼 퍔 할아버지와 더불어 도마뱀처럼 울었다 따이한 내 고향 할아버지를 보듬듯이 어린애마냥 훌쩍이는 퍔 할아버지를 껴안고 나는 시금치처럼 시들시들해지고 싶었다 아니 배추포기 속처럼 싱싱해지고 싶었다 아아 도마뱀이 그렇게 많이 울던 월남땅 60년대 우리가 벌거숭이로 스쳐간 월남땅
- 출처: 시집 『참깨를 털면서』(창작과비평사 1977)
▶ 김준태 시인 약력
1948년 전남 해남 출생, 조선대 독어교육과 졸업. 1969년 <전남일보>와 <전남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및 같은 해 『시인』지에 시 「머슴」 등 발표. 시집으로 『참깨를 털면서』, 『나는 하느님을 보았다』, 『국밥과 희망』, 『불이냐 꽃이냐』, 『넋 통일』, 『칼과 흙』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