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출신으로 일제의 징병을 피해 만주에서 활동했던 시인 심연수의 시선집 『소년아 봄은 오려니』에는 일제말 한글문학의 높은 성취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심연수 시인의 육필시 발굴 작업에 참여한 임헌영 교수(중앙대)는 "심연수의 존재로 1940년대 암흑기의 문학사가 결코 암흑기가 아님을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지(田地)"조차 남의 것이 되어 '빼앗긴 봄'을 맞을지라도, "씨앗"만 있다면 "생명의 환희"가 넘쳐나는 대지를 일굴 수 있다는 심연수 시인의 시적 전언은 오늘에 와서 재음미되어야 할 듯합니다. 심연수 시인의 시선집을 보노라면 '제2의 윤동주'라는 찬사가 결코 문학적 수사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광복 57주년을 맞아 민족문학작가회의·민족문제연구소·실천문학사 등은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친일파 문인 42명이 쓴 572편의 작품 명단을 공개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일제 시대 문인들의 친일 행각에 대한 '사과문'도 발표할 계획입니다. 우리의 경우 "자신이 친일 문인이었노라"고 커밍아웃(comming-out)을 선언한 문인들은 이항녕, 김남식, 시인 김동환의 아들 김영식 선생 등 몇몇 소수의 일에 불과했습니다. 또 소설가 이태준은 중편 「해방 전후」를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친일 경력'에 대해 비판적인 묘사를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인 단체가 나서 선배 작가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 선언문을 발표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광복절을 즈음하여 문학 행위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지를 재차 돌아보게 됩니다.
소년아 봄은 오려니
심연수
봄은 가까이에 왔다 말랐던 풀에 새움이 돋으리니 너의 조상은 농부였다 너의 아버지도 농부였다 전지(田地)는 남의 것이 되었으나 씨앗은 너의 집에 있을 게다 가산(家山)은 팔렸으나 나무는 그대로 자라더라 재 밑의 대장간집 멀리 떠나갔지만 끌 풍구는 그대로 놓여 있더구나 화덕에 숯 놓고 불씨 붙여 옛 소리를 다시 내어봐라 너의 집이 가난해도 그만한 불은 있을 게니 서투른 대장장이의 땀방울이 무딘 연장을 들게 한다더라 너는 농부의 아들 대장장이의 아들은 아니래도…… 겨울은 가고야 만다 계절은 순차(順次)를 명심한다 봄이 오면 해마다 생명의 환희가 생기로운 신비의 씨앗을 받더라.
(1943년 2월 8일 작) - 출전: 시선집 『소년아 봄은 오려니』(강원도민일보사, 2001)
[전문가 촌평]
심련수의 민족적 정서에 바탕한 저항시가 지닌 요소 중 유독 감동적인 것은 대륙적인 웅휘한 남성적 기백이 강철처럼 강인하게 펼쳐지는데 있다. 윤동주가 안온하게 성장한 도련님의 정서에 바탕했다면 그의 시는 대평원의 황야에 함부로 몸을 굴러댄 남아의 한이 스며 있다고 하겠다. 「눈보라」「지평선」「만주」 같은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설원을 방황하는 사나이의 이미지는 이육사나 청마가 체험했던 북만주의 시세계를 연상케 한다. / 임헌영·문학평론가, 중앙대 겸임교수
▶ 시인 심연수 약력
1918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를 졸업했다. 1943년 일제의 학병 강제징집을 피해 만주 용정으로 귀환해 소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45년 8월 8일 왕청현 춘양진에서 일제 앞잡이에 의해 피살됐다. 2000년 육필원고가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전집: 제1잡 심련수문학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