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을 만나면 닭과 놀고 까마귀와 만나면 까마귀와 같이 짖고 물고기와 만나면 물고기와 같이 헤엄치고 아이들 함께 불알 두 쪽 붉게 칠하던 화가여 가족 떠나버리고 色도 떠나보내고 마침내 色을 잃어 빛을 얻은 환쟁이여 소의 말*로 대신하여 인간의 말을 잃고 가난과 외로움을 업 삼아 생명을 소진하던 한 마리 소여 빛을 차단시키고 色만이 현란한 이 시대에 '가슴 환히' 열어 헤친 소여, 성난 황소여!
- 출전: 『실천문학』2001년 가을호
* 이중섭이 남겼다는 유일한 시 「소의 말」원문은 다음과 같다.
높고 뚜렷하고 /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 헤치다
정기복 약력 (1965 ~ )
1965년 충북 단양 출생. 강릉대 국문과 졸업. 1994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어떤 청혼』(1999)이 있음.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