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서 발목까지 잘박잘박 눈물로 차오른 밭벼를 보았다 숙련공처럼 씨알마다 포말 가득 채우고도 정갈한 바람 한 점 수태 시키지 못해 뒤엉켜 쓰러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기립의 슬픈 생애를 보았다 이 시대 깨어 있는 자들의 전생(全生)이 고서상 목선반 묵은 먼지 되어 더께 낀 전설쯤으로 휘어져버린 저 길목 어디쯤에 산길 먼 촌동네 전구알 같은 벼이삭 그 새끼친 알곡의 조각난 꿈을 보았다
추분(秋分) 넘긴 파리한 살갗 겨울갈이 꽃배추에게 몇 뼘 밭뙈기 내어주고 종로구청 쓰레기 수거 차량 잡쓰레기에 몸 섞기 전, 누군가 밤새 몰래 베어다가 새벽 말간 물에 불려 지상의 어떤 아름다운 단 한 사람을 위한 이승의 밥으로 지어져 주발에 고봉으로 담겨지기를
지하철 3호선 대화행 막전철이 오고 있다. 저기 사람들이 타고 또 내린다
시인 손세실리아
1963년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사람의문학』 <경향신문> <광주타임스>를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지중해의 미소를 닮은 남자』. 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