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 이해인 (25~30)
26
오늘은 모짜르트 곡을 들으며 잠들고 싶습니다.
몰래 숨어 들어온 감기 기운 같은 영원에의 그리움을 휘감고 쓸쓸함조차 실컷 맛들이고 싶습니다.
당신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대를 걸었던 나의 어리석음도 뉘우치면서
당신 안에 평온히 쉬고 싶습니다.
27
엄마를 만났다 헤어질 때처럼 눈물이 핑 돌아도 서운하지 않은 가을날.
살아 있음이 더욱 고맙고 슬픈 일이 생겨도 그저 은혜로운 가을날.
홀로 떠나기 위해 홀로 사는 목숨 또한 아름다운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28
가을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가을에 온 당신이 나를 떠날까 두렵습니다.
가을엔 아픔도 아름다운 것, 근심으로 얼굴이 핼쓱해져도 당신 앞엔 늘 행복합니다.
걸을 수 있는데도 업혀가길 원했던 나.
아이처럼 철없는 나의 행동을 오히려 어여삐 여기시던 당신
- 한 켤레의 고독을 신고 정갈한 마음으로 들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29
잃은 단어 하나를 찾아 헤매다 병이 나버리는 나의 마음을 창 밖의 귀뚜라미는 알아줍니다.
사람들이 싫어서는 아닌데도
조그만 벌레 한 마리에서 더 큰 위로를 받을 때도 있음을 당신은 아십니다.
30
여기 제가 왔습니다. 언제나 사랑의 園丁인 당신.
당신이 익히신 저 눈부신 열매들을 어서 먹게 해 주십시오.
가을 하늘처럼 높고 깊은 당신 사랑의 秘法을 들려 주십시오.
당신을 부르는 내 마음이 이 가을엔 좀더 겸허하게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