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 천상병
멀잖아 북악에서 바람이 불고
눈을 날리며, 겨울이 온다.
그날, 눈 오는 날에
하얗게 덮인 서울의 거리를
나는 봄이 그리워서 걸어가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없어도
나에게는 언제나
이러한 "다음"이 있었다.
이 새벽, 이 "다음".
이 절대한 불가항력을
나는 내 것이라 생각한다.
이윽고, 내일
나의 느린 걸음은
불보다도 더 뜨거운 것으로 변하여
나의 희망은
노도보다도 바다의 전부보다도
더 무거운 무게를 이 세계에 줄 것이다.
그러므로, 이 "다음"은
눈 오는 날의 서울 거리는
나의 세계의 바다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