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 김수영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너와 나 사이에 세상이 있었는지
세상과 나 사이에 네가 있었는지
너무 밝아서 나는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결코 너를 격하고 있는 세상에게 웃는 것은 아니리
너를 보고
너의 곁에 애처로울만치 바싹 다가서서
내가 웃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서가 아니라
너를 보고 짓는 짓궂은 웃음인줄 알어라
음탕할만치 잘 보이는 유리창
그러나 나는 너를 통하여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려운 세상과같이 배를 대고 있는
너의 대담성
그래서 나는 구태여 너에게로 더 한걸음 바싹 다가서서
그리움도 잊어버리고 웃는 것이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밝은 빛만으로 너는 살아왔고
또 너는 살 것인데
투명의 대명사같은 너의 몸을
지금 나는 은폐물같이 생각하고
기대고 앉아서
안도의 탄식을 짓는다
유리창이여
너는 언제부터 세상과 배를 대고 서기 시작했느냐
<19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