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진 - 김수영
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에는
안경이 걸려있고
내가 떳떳이 내다볼 수 없는 현실처럼
그의 눈은 깊이 파지어서
그래도 그것은
돌아가신 그날의 푸른 눈은 아니요
나의 기아처럼 그는 서서 나를 보고
나는 모오든 사람을 또한
나의 처를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것이요
영탄이 아닌 그의 키와
저주가 아닌 나의 얼굴에서
오오 나는 그의 얼굴을 따라
왜 이리 조바심하는 것이요
조바심도 습관이 되고
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
나의 무리하는 생에서
그의 사진도 무리가 아닐 수 없이
그의 사진은 이 맑고 넓은 아침에서
또하나의 나의 팔이 될 수 없는 비참이요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
시계의 열두시같이
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 ......
나는 모든 사람을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 보는 버릇이 있소
<1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