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삼 억겁의 어둠에 시달린 족속의 정령(精靈)이기에
빛과 열과 생명의 원천 !
또 그 모체 태양이 얼마나 그리웁고 핏줄기 땡기었으면
너 자신 이글이글 빛나는 화려한 태양의 모습을 닮아
그 뉘 알 길 없는 영겁의 원풀이를 위함인가
저 모양 색신을 쓰고 나타났으리......
태양이 꺼진 밤이면 청상스럽게도
목고개를 힘없이 떨어뜨리고
몽마(夢魔)처럼 그 속 모를 침울한 향수에 사로잡혀
죽은 듯 무색하다가도
저 멀리 먼동이 트기 시작하면
미몽(迷夢)에서 깨어나듯 기적같이 생동하여
홀연 ! 활기 띄우고 찬란히 빛나며
태양이 가는 방향의 뒤를 곧장 따라
고개 틀어 돌아가기에 바쁘면서도
얼굴은 노상 다소곳이 수그려 수줍은 요조(窈窕)인 양
한없이 솟아 오르는 그리움과 반가움의 심정 주체 못하는고녀 !
오 ! 너는 무슨 뜻 있어
인간의 생리와 표정과 꼭같은
그 속 모르게 수줍고 은근하고 향기롭고 화려하고
아아 황홀한 미소 ! 넘쳐 흐르도록 발산하여
영원히 불타는 태양의 입맞춤과
포옹을 사뭇 유혹하고 강요하는 것이뇨
빛과 사랑과 생명에 주린 넋 ! 불 붙은 정열을 다하여
태양을 겨누어 속에서 복받쳐 샘솟고 해일처럼 부풀어 오르는
사랑의 겁화(劫火) 다 쏟아 연소해 버리는
신과도 같은 사랑과 정열과 창조의욕의 결정체 !
너 해바라기의 비장한 운명의 미여 !
이윽고
거룩한 태양의 씨앗을 받아
부풀어 터지도록 가슴에 품어 안고
한 찰나 한 순간인 듯 짧고 긴 세월의
화려하고 찬란하던 그 화판도 이파리도
하나 둘 시들어 땅에 떨어지면
태양의 분신인 양 그 호사스럽던 빛깔도 열도 어느덧 사라져
태고 설화의 옛 일인 듯 그 자취 찾을 길 없고
여위고 뼈 마른 어느 거인의 짝지 모양
불붙어 다한 정열의 잔재----그 상징적 결정체
너 영원히 비밀한 생명의 역사를 새긴 기념비 !
올연(兀然)히 창공을 꿰뚫어 버티고
이제 나의 지극한 염원과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나의 일은 이미 끝났다는 듯
아낌 없고 남김 없이 자족하여
대오(大悟) 철저한 고승의 그것과도 같이
뽀얗게 서리 앉은 머리 경건히 숙여
엄연하고 고고하고 태연한 너 해바라기의
줄기찬 자세여 !
오 ! 불보다 태양보다 빛보다 어둠보다
생명보다도 또 죽음보다도
더 두렵고 심각한 너 해바라기의
속 모를 사랑의 연원(淵源)이여 !
불멸의 정열이여 !
오 ! 해바라기
너 정녕 태초 생명과 그 사랑을 더불어
영원 상념의 원천인 절대 신비한 대자연 !
생명의 핵심 ! 그 권화요 화신이 아니런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