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큰 등받이의자 깊숙이 오후, 가늘은 고드름 한 개
앉혀놓고 조그만 모빌처럼 흔들리며, 아버지 또 어디로
도망치셨는지. 책상 위에 조용히 누워 눈 뜨고 있는 커다란
물그림 가득 찬란한 햇빛의 손. 그 속의 나는 모든 것이 커
보이던 나이였다. 수수밥같이 침침한 마루 얇게 접히며, 학자풍
오후 나란히 짧은 세모잠. 가난한 아버지, 왜 항상 물그림만
그리셨을까? 낡은 커튼을 열면 양철 추녀 밑 저벅저벅 걸어오다
불현듯 멎는 눈의 발, 수염투성이 투명한 사십. 가난한 아버지,
왜 항상 물그림만 그리셨을까? 그림 밖으로 나올 때마다 나는
물 묻은 손을 들어 눈부신 겨울 햇살을 차마 만지지 못하였다.
창문 밑에는 발자국 하나 없고 나뭇가지는 손을 베일 듯 사나운
은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