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공중에 그은 실선이다
직육면체 모서리 실선 안팎으로 들락거리면서
나는 안심한다
날이 선 칼로 고기를 자르고
찌개를 끓인 뒤
공중에 떠 있는 직사각형 실선―탁자 위에서
밥을 먹는다
직육면체 속이 김으로 꽉 찬다
나는 안심한다
옷을 벗어던지고 거웃을 드러낸 채 잠을 잔다
허공에 직육면체의 붉은 선이 깜빡이고 있다
집이란 공중에 그은 실선이다
실선 안팎으로 들락거리면서 나는 분개한다
날이 선 칼로 공간을 여러 개로 나눈 뒤
집값 올린 놈들을 불러낸다
놈들이 자다가 불려 나온다
놈들을 작은 공간들에 밀어 넣는다
멋진 관들이 실선 안에 빼곡하다
나는 깜빡이는 선을 자른다
집이 흩어진다
공중에 축포가 터진다
재개발이다
끌려 나왔던 놈들은 더 큰 집으로 옮겨 갔다
나는 쥐었던 칼을 놓는다
칼은 낙엽처럼 떨어져 내려갔다
집이란 변명이다
변명이 끝나면 직육면체는 더 이상 깜빡거리지 않는다
밤새 철거 장비들이 소리 없이 다가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