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 - 이민하 어떤 사람은 물로 만들어졌단다, 칼로 찌르면 물이 빠져나와서 죽어버린다. 그녀 앞에서 혀를 불쑥 꺼낼 땐 조심해야 한다. 번쩍이는 빛을 함부로 휘둘러도 안 되지. 아침저녁으로 쏟아지는 장맛비는 이상한 죄책감에 젖게 한다. 오돌토돌 솟아오른 감정의 돌기들을 집어넣어야 한다. 소금으로 만든 사람이라면 위험천만. 그가 뿌리는 눈물 한 줌이면 그녀의 내장은 민달팽이처럼 오그라든다. 어떤 사람은 활활 옮겨붙는 불로 만들어졌단다. 바다가 없는 곳에서 동반자살이 유행하는 이유. 화상을 입은 사람들은 물새처럼 떠다니고 해변에 집을 짓는 시인들은 불의 아이를 키우기 때문이야. 기꺼이 목숨을 털어 불꽃을 피워 주는 나무로 만든 사람도 있다. 나이를 먹을 줄 아는 유일한 종족이다. 그들은 성숙해서 열매와 그늘을 자꾸 내려놓지만 폭풍을 타고 다니는 유랑민과는 상극이다. 가령, 머리채가 휘어잡히는 이런 날. 파랗게 찢긴 몸을 쓸어내리며 기억의 뿌리가 뽑히다 만 저 사람은 뼈다귀가 드러난 목발로 황혼에 이르렀다. 어둠의 도끼가 찍어 대는 줄도 모르고 나무 꼭대기로 올라간 고양이는 어디로 숨었을까. 꼬리를 더듬어 끌어내리고 남은 가닥의 뿌리로 묶은 매듭이 죽음이다. 죽음의 매듭으로 만든 사람도 있다. 매듭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굳었던 피가 흐르는 가려움 속에서 끊임없이 쪼아 대는 새의 부리 같은 연필로 만든 사람이 있다. 뾰족한 입술에 침을 발라 가며 게걸스럽게 이야기를 씹어 대지만 대부분은 고무로 만든 항문을 갖고 있다. 몸 전체가 항문인 고무로 만든 사람도 있다. 음악으로 만든 사람에 대해서라면 사계절의 뜬구름을 쏟아부어야 하리. 물의 악기와 소금의 살과 불의 피와 나무의 뼈와 바람의 꼬리와 죽음의 목소리를 지닌 투명인간이 계단으로 만든 사람 위에 구불구불 엎드려 있다. 승천하는 구둣발의 물결 속에서 관절이 하나씩 밟힐 때마다 계단의 떨림이 정수리까지 기어올랐다. 허공 끝까지 들썩거리는 음악의 둔부 아래로 외마다 침묵과 함께 첫눈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