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을 믿을 수 없다 - 권현형 전화기가 꺼져 있다 꺼진 그의 마음을 캐묻는 대신 소매 끝으로 전동차의 유리창을 닦는다 팔이 접혀지는 안쪽에 통증이 살아난다 눈이 큰 짐승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일부처럼 여름 저녁의 짧은 철로는 윤곽이 뚜렷하다 저녁 여섯 시 오렌지 빛 잔광 속에 물끄러미 있다 찻물 끓이는 주전자가 엎질러진 오래전 저녁 팔뚝 안쪽의 눈꽃 무늬 상흔은 저 절단된, 단절된 협궤열차의 팔뚝에 그리고 목요일의 오후에 걸쳐져 있다 금속성의 이가 시린 그것 내게 질문하고 싶다 아직도 사랑을 꿈꿔? 사람들은 일제히 가마우지 떼처럼 수면 가까이 유리창 가까이 붙어 서서 일몰을 내다보고 있다 두시모습에 너무 많은 표정이 담긴 자를 믿지 않는다 일몰을 믿지 않는다 그가 사라지고 나는 물끄러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