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제 몸이나 마음을 섞었었니 머리카락 한 올 손가락 한 마디라도 몇 마디 말만 살짝 주고받았을 뿐이지 그 말이라는 것도 마음 안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바람이 휙 부니까 벼린 가시에 슬쩍 앉았던 눈발처럼 흩어져버렸잖아 목숨보다 긴사랑 나보다 너를 더 사랑해 가끔 이런 눈부신 말이 마음을 찔러서 따끔거리는 것은 장미 가지 사이에 잠시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린 눈발 같은 것이겠지 그 가벼운 말들 새 봄에 피어날 푸른 장미 잎사귀는 구경조차 못하겠지 겨울 햇살의 희미한 온기도 못 견디고 날아가 버린 눈 네 인생에 손댄 것 아니잖아 독한 가시에 마구 찔렸다면 흰 눈발에서도 뜨겁고 붉은 피가 쏟아졌어야지 그 자리에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처럼 죽었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