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힘들지?”
이 한마디로 자살을 접는 이는 수도 없다.
문제는 둘뿐일 때 오직 둘뿐일 때,
둘이 각자 힘들 때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하지 못할 때
말해야 할 순간을 지나쳤을 때
그저 뒷모습만 바라보며
‘잘 이겨내겠지.’라고 생각할 때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더욱 치명적일 때가 있는데
“요즘 많이 힘들지?”라는 말을 왜 그 사람에게 해줘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영육의 평화를 깨는 건 아픈 일이다.
그러나 내가 조금 아파도 스스로 조각 낸 것에 내가 시리더라도
내게만 오던, 나를 만족시키던 각광(脚光)을 버리고 그 사람 주변을 비춰보면
그 사람
왜 힘든지 알게 된다.
각광을 받고 있으면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보이지 않고
보여도 흐릿하며 모두가 나를 주인공으로 받아 줘야만 사는 외발 인생이 된다.
답답한 건
내가 답답한 건
각광의 유한함을 모르고 내게 찔러대는 그 사람의 기침(氣針)이다.
두 손 모아 서로를 위해 기도할 줄만 안다면 족하다.
어린이는 ‘어리석은 이’다. 한자로 유치(幼稚)하다고 말한다.
어른은 유치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맑은 마음을 유지하려 애쓰며 유치를 벗을 때를 아는 사람이다.
시도 때도 없이 유치하면 곤란하다. 그 맑음이 빛을 잃기 때문이다.
매우 처절한 자화상이 된다.
오늘 그린 자화상은 10년 뒤 얼마나 추하게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