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 유묵 / 낭송 : 이금희
― 제비
한 획에 붙들린 바람이 기둥마다 가득했다
거니는 곳곳에 손끝으로 잡아챈 유묵들
역시나 저 오래 다스려진 문장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발길 닿는 대로 찾아든 소객이야 뒤란의 굴뚝만큼이나
조용히 뒤꿈치를 내려놓지만
그래도 이 고택에 한여름 더위를 피해 들어온 그늘이 더 고요했다
주련 글씨를 보려고 댓돌 아래 서 있다가
아궁이도 들여다보고 빈 마당도 건너다보고
처마에 걸린 햇살마냥 반쯤 그늘 묻은 눈길로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 밝은 적막을 따르던 눈길 끝에서
뭔가 놀란 듯이 휙 튀어나온 건 그때였다
제비였다 부엌 안쪽 높은 기둥에 지어 올린 제비집 한 채
한 발짝 새똥 눌어붙은 자리까지 다가가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또 제비 한 마리 휘이익 날아드는 게 아닌가
문간을 넘어서다 저도 놀랐는지
비좁은 부엌을 한 바퀴 돌고는 황급히 안대문 쪽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나는 추사의 글씨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제비가 두 갈래 꼬리로 소리도 없이 치고 날아간 그곳에서
어두운 눈은 또 한 획의 바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생동하고 있었다
기둥마다 새겨 올린 필적이 채 마르지 않았다
유묵이 가득했다
, 2011)창비(』코끼리 주파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