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22 21:34
배추의 겨울
박해영
겨울 텃밭에 배추 몇 포기 벌서고 있다
반쯤 문드러진 두둑 위
찢어진 비닐과 함께 너덜거리며 낡아 가고 있다
이 겨울 한가운데 올 때까지 몇 번이나 얼고 녹았을까
동료들은 다 김장 배추로 절여 지거나
하다못해 배추지지미 후보로 뽑혀나갔는데
이렇게 여러 번 얼었다 녹아도
따뜻한 밥상에 올라갈 날이 올 수는 있을 런지
진작 뽑혀져 저기 어디 쯤 내던져졌던 들
지금쯤은 흙속에 누워 편안히 흙이 되어가고 있을 것을
배추벌레가 배춧잎을 갉아 먹어도
진딧물이 새까맣게 잎 사이에 끼어도
건성건성 지나치던 야속한 농부
겨울 한 데에 이렇게 오래도록 벌세우고
어디 아랫목에서 살진 엉덩이를 지지고 있는 지
배추의 겨울은 호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