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양심의 거울에 묻어있던 가책의 먼지를 닦아내고 참회로써 자신의 본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마음의 자물쇠를 푸는 일이다. 오직 진실만으로 이루어지며 그 자체가 선행이다. 하나의 예술은 하나의 고백이며 모든 고백에는 감동과 아름다움이 내재되어 있다.
수면제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일용하는 밤의 양식. 불면의 세월 속에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허무의 수풀을 잠재우고 허약해진 육신의 아픔을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만드는 안식의 초대자. 꿈의 동반자. 소음 제거제.
삼라만상
라면 세 그릇으로 가득 채운 상.
자살
자신의 목숨이 자기 소유임을 만천하에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는 일. 피조물로써의 경거망동. 생명체로써의 절대비극. 그러나 가장 강렬한 삶에의 갈망.
출발점
과거를 끊어낸 자리. 미래의 생장점. 현재 바로 그 자리. 윤회의 매듭점.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떠나는 자리. 시간과 공간의 소실점. 인생의 모든 새벽.
길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길을 만든다. 인간들은 멀리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길을 만든다. 땅위에도 만들고 땅속에도 만든다. 하늘에도 만들고 바다 위에도 만든다. 그러나 인간들은 본디 자신들이 어느 길로 왔으며 어느 길로 가고 있는지를 대다수가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한자어로는 그 길을 도라고 표기하며 개개인의 마음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설파되어 왔다.
시계
하루를 시간별로 스물 네 토막씩 절단하는 기계.
문
드나들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설치물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마음 안에 감옥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감옥마다 견고한 문이 하나씩 매달려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법칙과 현상들이 갇힌다. 모든 이름과 추억들이 갇힌다. 그러나 아무것도 드나들지 못한다. 자기 자신이 갇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으며 안다고 하더라도 문을 여는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안에 있는 문은 오직 자기 자신을 버림으로써 만 그 열쇠를 발견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열쇠를 발견하는 순간 하나의 사물들은 하나의 문이며 언제나 자신을 향해 열려 있었음을 알게 된다. 닫혀 있었던 것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음을 알게 된다.
달팽이
한여름의 고독한 여행자. 그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집을 한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여행자.
자물쇠
도난을 방지하기 위하여 문이며 서랍이며 장롱이며 금고 따위에 설치하는 방범장치의 일종. 주인들은 대개 인간을 불신하고 자물쇠를 신뢰하지만 노련한 도둑을 만나면 무용지물이다. 그 자물쇠마저도 훔쳐 가버리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때로 마음의 문에까지 자물쇠를 채운다. 자물쇠를 채우고 스스로가 그 속에 갇힌다. 마음 안에 훔쳐 갈 보물이 빈약한 사람일수록 자물쇠가 견고하다. 그러나 그 누구의 마음을 걸어 잠근 자물쇠라 하더라도 반드시 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불길로 그 자물쇠를 녹여 버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