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4장 올림포스 신 시대 및 그 외 신들
8. 하데스
하데스(Hades, Pluto)의 원 뜻은 영계이며, 별칭인 부를 뜻하는 플루토는 지하계 땅 속에 금은보화가 간직되어 있다는 데서 연유한다. 올림포스 12주신의 한 신으로 명계를 지배하고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왕비로 삼았다. 매우 냉혹한 신이지만 지하계의 법을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하였으므로 결코 사악하거나 악마적인 신은 아니다. 지하계는 크게 두 곳을 나뉘는데, 죽자마자 가는 곳이 에레보스이고 밑이 없는 깊은 연못인 지옥이 타르타로스이다. 명계에는 비통의 강으로 불리는 아케론 강과 통곡의 강이라는 코큐토스 강이 흐르고, 카론이라는 매우 고집센 늙은 사공이 있어 죽은 자의 혼을 피안으로 건네주었다. 카론은 죽을 때 통행료를 내놓고 제대로 장례를 치른 영혼만 배에 태웠다. 강을 건너면 견고한 문이 서 있고 문에는 머리가 셋 달린 케르베로스가 지키고 서서 영혼을 들여보내기는 하되 아무도 나가지는 못하게 하였다. 영혼이 도착하면 각자 세 심판관인 라다만토스, 미노스, 아이아코스의 앞에서 선고를 받는데 악인은 지옥에서 끝없는 고문을 받고 착한 사람은 낙원으로 보내졌다. 또한 이 곳에는 지상에서 지하계로 흐르는 플레게톤(불의 강), 스튝스(증오의 강으로 저승을 굽이굽이 돌고 흐르며 이 강에 걸고 하는 맹세는 제우스도 어기지 못하였다), 레테(망각의 강)라는 세 강이 있었다. 넓은 지하계 어딘가에는 플루토 궁전이 있었으며, 복수의 여신 에리뉴에스(푸리아이)도 나타나 악한을 가차없이 냉혹하게 처벌하였다. 명계에서 살아나온 자로는 프슈케, 시슈포스,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아이네아스, 시뷸레가 있다.
하데스와 수문장 케르베로스 (헤라클리온 고고학 박물관)
9. 데메테르
데메테르(Demeter, Ceres)는 크로노스와 레아의 둘째딸로 헤스티아와 헤라의 가운데다. 종교상으로나 신화상으로 성격은 가이아(우주의 관점에서 대지여신)와는 판이하여 농사 특히 곡물의 지모신으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리스 세계 도처, 특히 밀이 자라는 고장이면 이 여신의 전설이 많다. 로마인은 이탈리아의 풍요의 여신 케레스와 동일시하였다. 데메테르 여신 숭배와 전설의 중심지는 엘레우시스와 시칠리아이며 그밖에 크레타, 트라키아 및 펠로폰네소스에서도 성행하였다. 여신 숭배와 전설은 데메테르와 그녀의 딸로 후에 코레라고만 불린 페르세포네가 긴밀히 연계되어 각지에서는 단순히 이주여신으로 존경하는 경우가 많고, 대중신화는 전승된 두 모녀의 특이한 사건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엘레우시스 비의의 시작은 여신 속에 태로된 깊은 의미를 발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제우스와 데메테르 사이에 태어난 페르세포네는 이복자매인 아테나 및 아르테미스와 함께 행복하게 성장하였고 결혼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페르세포네에게 눈독을 들인 숙부 하데스가 제우스의 동의를 받아 그녀를 유괴해 버렸다. 시칠리아의 엔나 초원에서 유괴하였다 하나 막연히 뉴사 초원이라고도 한다. 다른 설에는 엘레우시스 혹은 아르카디아의 큐레네 산록 케피소스 강변에 하데스의 나라로 통하는 동굴이 있는 들 혹은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근처 동굴이 있는 초원이라고도 한다. 그 곳이 어디였든간에 땅이 열리고 동굴에서 나타난 하데스는 꽃을 따고 있던 페르세포네를 불문곡직한 채 끌고 지하계로 내려가 버렸다. 딸의 실종을 알게 된 데메테르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온 세상을 수소문하여 딸을 찾아나섰다. 구렁으로 끌려가면서 계속 절규하는 페르세포네의 울부짖음을 얼핏 듣고 데메테르는 깜짝 놀라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갔으나 딸의 흔적은 찾을 길이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9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목욕도 하지 않고 의복도 갈아입지 않은 채 양 손에 횃불을 들고 실성한 채로 딸의 행방을 찾아 세상을 헤맸다. 열흘째 되던 날, 헤카테를 만나 물었으나 여시 딸의 울음소리는 들었지만 행방은 모른다고 하였다. 결국 납치 정황을 모두 지켜본 바 있는 헬리오스가 데메테르의 딱한 모습을 보고 사건 전모를 알려주었다. 그러나 전승된 이야기로는 아르골리드의 주민인 헤르미오네가 하데스가 범인이라고 일러 주었다고 한다. 화가 치민 데메테르는 천계로 돌아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지상에 남아 딸이 돌아올 때가지 곡물 여신의 역할을 포기하였다. 그리고는 노파로 변장하여 엘레우시스로 가서 바위에 앉아 쉬었는데 그 후 이 바위는 '즐거움없는 바위'로 불리게 되었다. 이어서 그 나라 왕 켈레오스를 만나러 가던 길에 한 아낙네와 어울리게 되는데 이암베라는 이 여자는 익살스런 농으로 오랜만에 데메테르에게 웃음을 찾아주었다.
데메테르는 왕궁에 가서 왕비가 막 출산한 아들 데모폰(혹은 트립톨레모스 라고도 한다)의 유모가 되었다. 왕과 왕비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므로 여신은 그 대가로 아기를 불사신으로 만들어 주기로 결심하였다. 이에 인간 부분을 불에 태우는데 마침 왕비가 나타나 이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아기를 빼앗았다. 그제서야 여신은 신분을 밝힌 후 자신의 본 뜻을 알리고 왕자 데모폰에게는 이 세상 어디에 가든 밀을 뿌리라고 지시하였다. 다른 설에는 시큐온 왕 플렘나이오스의 유모역을 하였다고도 한다. 여신이 이렇듯 자진하여 천공에서 지상으로 망명하여 귀양살이를 하자 땅이 메말라 황폐해지고 온 세상은 황무지가 되어 인간에게 끼치는 피해가 막심하였다. 이에 제우스는 하데스에게 페르세포네를 돌려보낼 것을 지시하였다. 그러나 페르세포네는 이미 지하세계에서 단식을 지키지 않고 석류씨를 먹었기 때문에 하데스에게 몸을 의지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제우스는 지상과 지하 사정을 절충하여 1년의 반은 어머니가 있는 올림포스 산에서, 나머지 반은 지하계에서 살게 하니 데메테르는 딸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엇다. 이렇게 해서 매년 봄 밭고랑에서 첫 싹이 솟아나면 페르세포네는 지하계에서 탈출하여 천상에 올랐고, 결실기에는 다시 지하로 들어갔다. 그리고 페르세포네가 데메테르와 헤어져 있는 동안 땅은 말라붙고 음산한 겨울철이 되어 지상은 괴로움을 받게 되었다.
한편 데메테르가 딸을 행방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에는 지역에 따른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곁들여졌다. 예컨대 시큐온에서는 여신이 물레방아를 발명하여 주민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고 딴 곳에서는 야채 기르는 법을 일러주었으며 특히 콩과 무화과 재배법을 가르쳤다.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 성역은 그리스 전역에 퍼져 있는데 옛적에 여신이 체재한 곳이거나 은신처라고 전해져 온다. 또한 이 이야기 안에는 데메테르가 페르세포네를 찾고 있을 때 그녀를 사랑하여 열을 올린 포세이돈의 이야기도 가미되었다. 당시 데메테르는 포세이돈의 눈을 피해 암말로 변하였는데 포세이돈 또한 수말로 변신하여 교합하였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서 아레이온이라는 명마와 그 이름을 언급이 금기된, 그저 여사(mistress)라고만 불리는 딸이 태어났다. 그밖에 데메테르는 이아시온과 밭에서 연애하여 아들 플루토스를 두었는데 커서 부의 신이 되었다. 데메테르는 숭배지역의 지배권을 두고 시칠리아에서는 헤파이스토스와, 캄파니아에서는 디오뉴소스와 다투었다. 데메테르 여신의 상징 식물은 밀이삭과 수선화 및 앵속이고, 좋아하는 새는 두루미이며 암퇘지를 공양으로 바친다. 조각상은 횃불과 뱀을 갖고 있거나 밀이삭을 가진 상으로 표현한다. 테스모포리아는 테스모포라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데메테르와 딸 페르세포네를 위한 비의 축제로 가을철에 그리스 전역에서 개최되었다. 아테네에서는 퓨아넵시온(10.11월)에 데메테르 축제 퓨아넵시아가 개최되었는데, 제11~13일에는 여성만이 제를 지내며 그 첫날에는 나뭇가지로 천막을 치고 모여 앉는다. 축제는 둘째날에 시작되고 3일째 되는 날에는 땅에 뿌릴 씨앗에 성장과 다산 또한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를 올렸다.
데메테르
엘레우시스 성소용의 원본 그리스 작품의 로마시대 복제품 (기원전 425~420년 경)
10. 브리아레오스
브리아레오스(Briareus)는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아들로 100개의 손과 50개의 머리를 가진 유명한 기가스이다. 인간들은 그를 아이가이온이라 부르고 신들만이 브리아레오스라 불렀다. 헤라, 제우스 및 아테나가 크로노스를 신권에서 몰아내기로 공모했을 때 브리아 레오스가 청공으로 올라와 크로노스 쪽에 대좌하였는데 그의 사납고 위협적인 외모에 기가 질려 공모를 단념하였다. 후에 신권전쟁에서 거인족측에 가담하였다가 에트나 산으로 추방당하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브리아레오스는 큐클로페스로 올림포스 신족이 공모하여 제우스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을 때 테튜스의 부름을 받고 달려와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워 제우스의 신임을 얻었다. 그는 또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코린토스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분쟁을 일으키자 중재에 나서서 아크로코린토스는 아폴론에게, 나머지는 포세이돈에게 나누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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