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뭉스러운 이야기 3」(시인 이재무) 2009년 8월 6일 |
한내댁은 후닥닥 냉물에 찬밥 말아 텃밭에서 따 온 깻잎과 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고 사립을 나섰다. 수건을 머리에 질끈 동여매고 산 날멩이 산밭을 찾아가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콩밭을 다 매놓고 내일부터 동서네 버섯 일을 도우러 갈 참이었다. 곡식들은 농사꾼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그것들도 생명이라고 정성 들인 만큼 표를 내는 것들이라 한시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소출 때가 되면 허망한 것이 농사일인지라 그 생각만 하면 이까짓 거름값도 못 건지는 밭일 당장 때려치우고 싶지만 어디 그게 맘같이 되는 일이던가. 농사짓는 이에게 땅 놀리는 일처럼 콘 죄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하여 쇠못이 되어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햇살을, 동여맨 수건으로 간신히 버텨내며 고랑을 타고 앉아 콩밭 매기 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부릉부릉 하는 차 소리가 들려 왔다. 그냥 지나가는 차려니 하고 별 괘념하지 않고 밭 매는 일에 더욱 열중하고 있는데 어라, 이 차가 밭가에 세워진 채 도통 움직이질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슬그머니 호기심이 동해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여 밭고랑을 빠져나와 다가가 보았던 한내댁은 못 볼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가슴이 벌렁벌렁 콩닥콩닥 숫처녀로 돌아간 것처럼 마구 뛰었고 얼굴은 번철처럼 달아올랐다. 차 안에서 새파랗게 젊은것들이 뱀처럼 엉켜 자반뒤집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말로만 듣던 ‘카섹스’란 것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숭악한 것들을 봤나, 벌건 대낮에 저게 무슨 벼락맞을 짓이랴, 하면서도 한내댁은 소주 먹은 듯 마음과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였다. 도무지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호미를 밭고랑에 팽개치고 급한 일이나 만난 것처럼 발걸음을 재게 놀려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남편은 한갓지게 대청에서 대자로 누워 서까래가 들썩이도록 드렁드렁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한내댁은 자는 남편의 옆구리를 찔러 깨웠다. “여보, 여보, 저기 우리 밭길서 젊은것들이 차 안에 누워 그 짓을 하고 있슈. 그게 서울것들 유행이라든디 우리도 한번 해 봐유.” “아니, 이 여편네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뭔 개 풀 뜯어먹는 소리여, 뭐이 어째, 카섹스 그걸 해 달라고, 미쳤나.” 하면서도 남편은 저도 모르게 아랫도리가 불쑥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임자, 그게 그렇게 부러워, 까짓것 하지 못할 것 뭐 있어, 하자구 그런디 어디서 혀, 경운기서 할까. 가마니나 두어 장 깔아 봐.”
염천의 햇볕이 벌겋게 마을의 지붕을 달구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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