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도시, 서울을 바라보며 - 도종환 (128)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향해 나아갑니다. 자본주의는 불평등을 제도화하고 싶어 합니다. 자본의 논리로 사회를 이끌어 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은 제도고 사람이고 규제고 무엇이든 없애고 싶어 합니다. 그게 자본주의 근원적인 꿈이고 이상입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걸 압니다. 인간이 꿈꾸고 욕망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걸 잘 압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상은 평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많은 인간의 내부에는 남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동등하게 누리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건 그 욕구를 실현해 줄 것을 요구하는 집단적 갈망이 있어 왔고, 그것의 실현 여부가 한 시대의 주제어가 되곤 합니다. 그것이 자유일 때도 있었고 인권일 때도 있으며 평화나 독립일 때도 있고 빵으로 표출될 때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자주 충돌합니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평등이라는 이상적 가치와 불평등한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조화롭게 해결해 나가는 것이 국가와 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국민들은 그 책임을 국가와 자치단체 지도자들에게 위임한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와 자치단체가 앞장서서 불평등을 합법화, 제도화 하려고 한다면 그 사회는 균형을 잃고 전체주의로 기울게 됩니다. 도정일 교수는 그것을 시장전체주의라고 말합니다. 주거환경 개선이란 이름으로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온 가난한 사람들과 영세 상인들을 내쫓고 분열시키며 불신과 분노와 원망으로 가득 찬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채 건설재벌과 투기세력과 시행업체와 지주의 이익만을 보장해 주는 것은 자치단체와 국가가 할 일이 아닙니다.
국가와 자치단체는 그 지역에 살아온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임대주택이나 임대상가 등을 마련한다든가, 거대한 부동산 개발이익의 일정부분을 공익을 위해 재투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든가, 순환 재개발 제도를 만든다든가, 아니면 주거생활과 관련된 재개발문제을 공공부문에서 책임지고 집행하는 장기적인 설계를 한다든가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용산구청 앞에 걸려 있는 거대한 경고문에는 재개발 문제로 인해 구청을 찾아와 항의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생떼 부리는 집단"으로 간주하여 지역민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일본 도쿄 롯본기힐스 복합시설은 17년에 걸쳐 3천 회 이상의 간담회를 거치며 사업이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상대를 하려고 하지 않거나, 용역을 내세워 집단 폭력을 가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경찰력 소방력과 같은 물리력으로 전쟁을 하듯 진압해 버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용산참사와 같은 사고가 일어날 재개발 지역이 서울만 해도 34곳 184개 구역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지방도시까지 합치면 전국이 화약고와 같은 상태로 경찰과 용역과 막다른 곳에 몰린 철거민들이 충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용산 역세권 재개발 사업의 총사업비가 28조원에 이르고 주간사인 삼성물산의 경우 사업 이익이 1조 4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증권가에서는 추산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련된 사람과 업체가 개발이익을 나누어 갖고 지자체도 재산세 수입이 늘어나겠지만 그것 때문에 2, 3천만 원을 받고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과 경찰이 불타 죽는 일이 생겨도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런 끔찍한 희생을 자성의 기회로 삼지 않고 자본만을 옹호하고 책임을 떠넘길 궁리만 하며 얼굴을 돌리고 있다면 국정을 책임질 자격이 없습니다. 인간을 중심으로 사고하지 않고 오직 자본의 논리로만 이끌려가면서 국가권력과 정치인들이 그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면 이런 시스템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지속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멸망으로 가는 길을 향해 속도전을 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개발이 있는 곳에는 싸움이 있습니다. 개발로 이익을 보려는 사람과 몇 백만 원이라도 더 보상을 타내 다른 데 가서 가게라도 하나 내보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의 싸움만이 있는 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끼리도 입장이 달라 싸웁니다. 한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고 집사와 권사가 원수가 되거나, 실망하여 교회를 나오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 시절 뉴타운 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서울의 재개발 지역 모든 곳에서는 싸움과 원망과 불신과 대립과 분노와 욕설과 저주가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들은 국가권력은 언제나 부자와 재벌의 편에 선다고 생각합니다. 장로인 이명박 대통령이 하느님께 봉헌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이 도시, 불타며 죽어가고 망가지고 있는 도시 서울을 하느님도 내려다보고 계실 것입니다.
국가권력이 해야 할 일은 건설재벌의 이익만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갈등을 조정하고 대화하며 갈등을 최소화하고 약자의 분노에 귀 기울여 주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도시 건설 계획과 부의 공정한 분배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정치가 할 일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