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랑의 기쁨을 구름 위를 걷는 기분에 비유하기도 한다. 정말로 구름 위를 걸어본 사람은 없을테지만 사랑은 그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과연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시종일관 달콤하기만 했던가. 사랑을 주관하는 신 에로스. 그의 탄생신화에서 사랑의 본질을 찾아보자.
플라톤의『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스승으로 추론되는 여사제 디오티마(Diotima)가 들려주는 사랑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생일 날, 많은 신들이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올림포스 신궁으로 모여들었다. 당연히 첫번째 타자는 풍요의 신 포로스(Poros). 그는 신들이 먹는 음식인 암브로시아(ambrosia)와 넥타르(nektar)를 충분히 배불리 먹고 한쪽에 가서 일찍 잠들었다. 그때 뒤늦게 결핍의 여신 페니아(Penia)가 나타났다. 이미 신궁에는 음식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다. 페니아 여신은 너무 속상해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남은 음식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보다 여유롭게 잠든 배부른 포로스 신을 보게 되었다. 페니아 여신은 분하고 괴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나 포로스 신과 함께라면 굶주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만 잠든 그를 범해버렸다. 이렇게 태어난 아기가 사랑의 신 에로스다. 그래서 사랑은 언제나 채워져 있는 듯 하면서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사랑이 이렇게 양면적 모습을 갖는 것은 에로스가 부모의 성질을 그대로 물러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말 구름 위를 거닐 듯한 충만감으로 언제나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서도 언제나 외롭다. 사랑이 잔혹한 건 어쩌면 에로스 부모 탓으로 돌려야 할지도.
에로스 신의 탄생 신화는 모두 일곱 가지 버전이 있다. 그렇다고 에로스가 일곱 번 태어났다는 것은 아니다. 가장 많은 학자들이 정설로 인정하는 버전은 전령신 헤르메스(Hermes)와 아름다움의 여신이자 사랑의 여신이었던 아프로디테의 결합에 의해 에로스가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에로스를 사랑(어머니의 속성)의 메신저(아버지의 속성)라고 부른다.
에로스 탄생과 관련한 또 다른 주장으로는 에로스를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보는 것이다. 아프로디테가 아레스와 사랑을 나눌 때에는 이미 헤파이스토스와 결혼한 상태였으므로 그들은 불륜관계였다. 오랜 시간 상당히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던 그들은 그들의 불안한 심정이 잘 반영된 두 아들 공포의 신(Phobos)과 근심의 신(Demos)을 낳은 후, 딸인 조화의 여신(Harmonia)을 낳았다. 그때는 그들의 사랑이 공포와 근심 속에서 성숙해 조화를 이루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이 가장 마지막에 낳은 자식이 바로 에로스. 사랑은 이렇게 수많은 고통을 겪은 두 사람이 조화를 이뤄 완성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