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규범을 근거로 언어 사용의 잘못을 지적하면서도, 그런 지적을 받으며 사용되던 말이 자리를 잡고 나면 그 말을 근거로 규범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고급진 옷차림을 한 남자”나 “실내 장식이 세련되고 고급졌다.”는 요즘 많이 쓰이는 표현이지만 규범에는 맞지 않는다. 규범대로라면 ‘고급지다’는 ‘고급스럽다’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규범의 제약에도 ‘고급지다’는 더 널리 쓰이면서 도리어 규범을 바꿀 기세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고급지다’가 ‘고급스럽다’를 대체해도 자연스러울 만큼 접미사 ‘-지다’와 ‘-스럽다’의 의미가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접미사가 ‘그런 성질이 있음’이란 의미를 공유하더라도 그 쓰임이 항상 같은 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와 같은 용법에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급지다’가 널리 쓰이게 되니 규칙의 호위를 받지 못하는 규범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결국 ‘고급지다’의 확장을 막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고급지다’가 확장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다’와 ‘-스럽다’의 쓰임에 ‘고급지다’를 유추할 수 있는 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멋지다’와 ‘멋스럽다’는 모두 가능한데, ‘멋스럽다’에서 ‘고급스럽다’를 연상하는 일이 잦아지면 어떻게 될까? 머릿속엔 “멋지다 : 멋스럽다 = X : 고급스럽다”의 틀이 생길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그 틀의 X가 ‘고급지다’로 채워질 것이다. 게다가 ‘고급지다’에서 ‘값지다’를 연상하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연결 고리에서 ‘고급지다’가 자리 잡게 되면 ‘값스럽다’가 널리 쓰이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