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다’가 포함된 표현에는 불안이 깔려 있다. 나는 스타가 되는 것을 뜻하는 ‘뜨다’라는 표현에서 추락의 공포를 먼저 느낀다. 그러니 그 태생부터 종잡을 수 없는 ‘돈’과 ‘뜨다’가 결합한 표현에서 새로운 불안을 읽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뜬돈’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어쩌다가 우연히 생긴 돈”이라 풀이했다. 이처럼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손에 쥔 것은 횡재이지만 그건 불안의 시작일 수 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돈과 이에 대한 불안의 양상이 다양한 만큼 ‘뜬돈’은 사전의 풀이를 넘어선 의미로 다양한 맥락에서 쓰인다.
“갈 곳 잃어 헤매는 ‘뜬돈’, 또 사상 최대”라는 신문의 표제에서 ‘뜬돈’은 투기성 자금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농업분야 국고보조금은 ‘공돈’ ‘뜬돈’으로 인식됐는지 침 바르고 덤벼든 사람들이 줄줄이 걸려들고 있다고 한다”라는 기사문에서 ‘뜬돈’은 ‘공돈’이나 ‘눈먼 돈’과 같은 말로 쓰이고 있다.
‘뜬돈’이 아무리 불안을 상징한다고 해도 그런 불안은 근본을 성찰할 때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뜬돈’은 당장의 행운일 테니까. 그런 점에서 ‘뜨다’에 깔린 불안은 생업과 연관된 ‘벌이’와의 결합에서나 실감할 수 있다.
‘뜬벌이’는 “고정된 일자리가 아닌 어쩌다 생긴 일자리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돈 따위를 버는 일”이다. 돈 생기는 일이되, 돈이 어디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뚝 떨어져야 돈을 만져볼 수 있는 것이다. 일자리가 ‘뜬돈’ 생기듯 나타나는 상황에서, 하루 벌어 사는 사람은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나? ‘뜬벌이’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뜬돈’을 향한 열망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회는 더 불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