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낙눈
꼭 1년 전 일이다. 새해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우리 가족은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전남 보성. 해가 저물어 출발했는데 목적지에 가까워지면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눈길이 걱정이 되어 큰애더러 일기예보 좀 검색해 보라고 했더니, 자정에 폭설이 있단다. 숙소에 도착하는 일도 문제지만 다음날 움직일 일도 걱정이 된다. 폭설이라니 아무래도 하루쯤 발이 묶이게 될 거라고 생각해서 다음 일정을 바꾸느니 마느니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그사이 여기저기 뉴스를 찾아보던 딸애가 말한다. “소낙눈이라는데.” 소낙눈,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지만 그 뜻은 온전히 머릿속으로 환하게 들어온다. 잠깐 내리는 눈이구나. 그러고 보니 일기예보에서 왜 하필 ‘자정’에 눈이 내린다고 했는지 의문점이 깨끗이 해소된다.
소낙눈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눈이다. 그래서 폭설과 소낙눈은 의미가 같지 않다. 폭설은 며칠간도 이어질 수 있지만 소낙눈은 짧은 시간 동안만 내리는 눈이다. 나중에 보니 소낙눈은 의외로 일기예보에서 자주 쓰는 말이었다. 이 말은 50년대에 완간된 한글학회의 ‘큰사전’에는 오르지 않았고 70년대 중반 신문 기사에서 한두 개 보이기 시작한다. 아마 그 무렵 생긴 말일 텐데 이후에도 드물게 보이다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점점 활발하게 쓰여 오고 있다.
누군가 ‘소낙비’를 본떠 만들었을 이 고마운 낱말 하나가 살아남아 오늘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소낙눈은 잠깐 내리는 눈이니 생활에 큰 불편을 주지 않으면서 세상은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새해에는 그 눈만큼 아름다운 이런 말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소망한다.
허철구 창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