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놈’과 ‘숫놈’을 사이에 두고 아나운서실에서 격론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맞춤법 표기는 수놈으로 되어 있으나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숫놈[숟놈→순놈]이라고 발음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수소(황소)’도 마찬가지였다. ‘수소’는 어색하게 느껴지고 ‘숫소’가 자연스럽게 들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나운서들은 원칙과 현실 발음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많이 있다.
현행 맞춤법 규정은 수컷을 이르는 접두사는 ‘수-’로 통일하기로 하고 있다. 이 원칙에 따라 ‘숫놈’을 버리고 ‘수놈’이 표준어가 되었다. ‘숫소’가 아니라 ‘수소’, ‘숫꿩’이 아니라 ‘수꿩’, ‘수나사’, ‘수은행나무’가 된 것이다.
모두가 ‘수-’로 통일됐다면 쉽겠다. 그런데 다음의 경우는 ‘수-’ 뒤의 거센 소리를 인정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암수’의 ‘수’가 ‘숳’에서 왔기 때문에 그 흔적이 남아 굳어진 것들이다. 수컷, 수캉아지, 수캐, 수키와, 수탉, 수탕나귀, 수평아리, 수퇘지가 그것이다. 암컷을 이르는 접두사 ‘암’의 경우도 이에 준해 암컷, 암캉아지, 암캐, 암키와, 암탉, 암탕나귀, 암평아리, 암퇘지를 표준어로 인정하였다.
그런데 ‘수’ 뒤의 거센 소리가 굳어진 것을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의 문제는 기준이 모호하다. ‘개미’나 ‘거미’ ‘벌’의 경우 ‘수캐미’ ‘수커미’ ‘수펄’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도 많지만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맞춤법 규정은 ‘수개미’ ‘수거미’ ‘수벌’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숫-’을 인정하는 것은 ‘숫양’ ‘숫염소’ ‘숫쥐’ 뿐이다.
그래도 ‘수놈’ ‘수소’는 어색하다.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수놈’이라 쓰지만 ‘숫놈’[순놈]이라 읽는다. ‘수소’라 쓰고 ‘숫소’[숟쏘]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