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강변이나 공원에 나가보면 선홍빛으로 무리지어 핀 양귀비꽃을 쉽게 만난다. 절세미인 양귀비의 이름을 딴 꽃이라서 인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이 꽃의 정확한 이름은 양귀비가 아니라 개양귀비다. 양귀비는 열매가 아편의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재배가 금지되어 있다.
우리말에는 개양귀비뿐 아니라 개나리, 개살구, 개연꽃 등 이름에 ‘개’가 붙어있는 식물이 많다. 접두사 ‘개’가 꽃이나 열매 이름에 붙을 때는 야생이거나, 짝이 되는 본래의 식물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혹은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라는 뜻이다. 개나리는 들에 저절로 피어나는 나리를 가리킨다. 개연꽃은 연꽃만큼 탐스러운 꽃을 피우지 못해서, 개살구는 새콤달콤한 살구와 달리 시고 떫은 맛이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오죽하면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다 있을까.
어쨌거나 이름에 ‘개’가 들어가면 보잘것없거나 변변치 못하단 뜻이다. 개양귀비는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 양귀비만큼 예쁘지가 않아서? 꽃의 크기나 모양에서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개양귀비가 색깔이 더 곱고 아담해서 집 주변에 심어두고 보기엔 더 낫다. 다만 옛 사람들은 약재로서의 효능 때문에 양귀비를 소중히 여겼다. 약이 귀했던 시절에는 열매뿐 아니라 줄기까지도 복통 치료제로 요긴하게 쓰였다. 그에 비하면 개양귀비는 별 쓸모가 없으니 ‘개’가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양귀비 덕을 볼 일이 거의 없다. 금지 작물보다는 오히려 가까이에서 아름다운 꽃을 보게 해주는 개양귀비가 훨씬 소중하다. 그래선지 요즘엔 개양귀비 대신 꽃양귀비라고 부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같은 사물이라도 관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