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사평역 3번 출구. 스산한 바람이 뒹굴고 무심한 차들이 질주하는 고갯마루에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분향소가 있다. 바로 곁에 “정치 선동꾼 물러나라”라는 펼침막을 붙인 봉고차 한대. 이 어색한 밀착의 공간을 서성거린다.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 주변을 배회하는 구경꾼들이 있다. 사건을 관망하면서 말을 끄집어내는 구경꾼들의 입은 당사자만큼이나 중요하다. 권력자들을 떨게 만드는 건 구경꾼들의 예측할 수 없는 의지와 결집이니.
8년 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이었던 유경근씨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들의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이다. 이것을 정말 듣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도 희생자 가족들은 그 ‘부질없는 말’을 정말 듣고 싶어 한다.
권력자들은 말이 없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듯. 그들이 입을 닫으니 반동들이 입을 연다. 예전보다 더 빠르고 악랄하고 노골적이다. 권력자들은 반동의 무리들이 반갑다. 구경꾼들을 당사자들과 분리시키고, 자기들끼리 싸우게 될 테니.
그러니 말을 믿지 말자. 권력자의 말을 믿지 말자. 그들이 하지 않은 말도 믿지 말자. 뉴스를 믿지 말자. 신문에 기사화된 분노를 믿지 말자. 그 분노는 애초에 우리의 심장 속에 있었다. 대중매체가 훔쳐 간 것이다. 휴대폰만 쳐다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능욕하는 막말도 의견인 양 같은 무게로 읽힌다. 그러니 우리의 감각을 믿지 말자. 우리의 무감각도 믿지 말자. 우리에게 절실한 건 ‘가서 보는 것’. 참사를 만져보는 것. 목격자로서 말을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