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골에선 겨울에 산문이 열린다. 이웃들이 함께 산에 올라 땔감을 한다. 하지만 어찌 한날한시에 다 모일 수 있으랴. 노가다판에 가 있기도 하고 낫질하다 손가락이 상해 못 나오기도 하지. 으스름 저녁 이고지고 온 나무를 마당에 부리고 나면, 분배가 문제. 식구 수에 따라 나누자니 저 집은 한 사람밖에 안 나왔다고 투덜. 똑같이 나누자니 저 집 나무는 짱짱한데, 내 건 다 썩어 호로록 타버리겠다고 씨부렁.
거기에 오촌 아재 등장. ‘오촌’은 ‘적당한 거리감’의 상징. 막걸리잔 부딪치며 ‘행님 나무가 짱짱하니 고 정도로 참으쇼.’ ‘저 동상네 아부지가 션찮으니 몸이라도 지지게 좀 더 줍시다.’ 한다.
다툼은 쪼잔한 데서 시작된다. 우리 동네에서도 마을정원 일을 해야 했다. 방역조치 때문에 화요일과 금요일 반으로 나눠 일을 했다. 마치고 점심을 먹자니 화요일 반에선 밥 먹는 데 돈 쓰지 말라며 사양, 금요일 반은 일 마치고 차 타고 퇴비 사러 갔다 오다 늦은 점심을 먹은 게 탈이었다. 누군 사주고 누군 안 사주었네, 친한 사람들끼리 먹었네 하며 마을 여론이 두 갈래로 쩍 갈라졌다.
자율적 공동체가 역동성을 갖추려면 적어도 네 가지 유형의 인물이 필요하다(가타리, <미시정치>). 어린이(미래), 국가(외부 자원), 이웃 주민(동료), 그리고 대안적 인물(상상). 그는 자유의 공간을 창조하는 인물이자 당면한 사태 너머를 보는 사람이다. 험담이 퍼져나가지 않게 움직이며 활로를 찾아낸다. 그의 가장 큰 역할은 ‘말’을 건사하는 일이다. 어디든 오촌 아재 같은 사람이 있으면 흥하고, 없으면 졸한다.
나는 지금도 지인들한테 보내는 이메일에 ‘ㄱㅣㅁㅈㅣㄴㅎㅐ’라 쓰곤 한다. 재미있기도 하지만 음소문자인 한글의 또 다른 표기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풀어쓰면 좋은 점이 있다. 영어 필기체처럼 글씨를 더 빨리 쓸 수 있고, 컴퓨터 글자체(폰트) 개발에도 시간을 ‘엄청’ 줄일 수 있다. ‘걎, 걞, 겏’이나 ‘뷁’처럼, 한글로 만들 수 있는 음절수는 무려 1만1172자이다.(한자에 이어 세계 2위!) 이 중에서 흔히 쓰는 음절 2350자는 반드시 디자인을 해야 한다. ‘ㅇ아안않우울오올의궁굉’에 쓰인 ‘ㅇ’이 다 다르게 생겼으니 말이다. 풀어쓰기를 하면 ‘ㅇ’을 하나만 디자인하면 된다. 폰트 디자이너도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
주시경을 시작으로 그의 제자 최현배(남), 김두봉(북)이 풀어쓰기를 주도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꿈이기도 했다. 이들에게 문자 개혁의 종착지는 풀어쓰기였다. 문익환 목사도 감옥에 있으면서 풀어쓰기 연구에 몰두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익숙한 모아쓰기에 정통성을 부여한다. 현실이 궁극의 합리성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결여나 불합리로 보지 않는다. 못 미치면 못 미치는 대로 그 속에서 이치를 찾고 습관을 들인다. 문화는 논리보다는 습관에 가깝다. 사람의 발자국이 쌓여 길이 만들어지면 꼬부랑길일지라도 그게 가장 편하고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