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있음을 알게 하는 소리나 기색. ‘기척’만으로도 충분하지만 사람 소리임을 강조하려고 ‘사람인’자를 덧붙였다. ‘인적’이란 말에 ‘기운’의 뜻을 붙인 ‘인적기’(人跡氣)란 말이 있지만 쓰는 사람이 드물다. ‘인적’이 발자국이든 온기든 과거의 흔적을 더듬는 것이라면 ‘인기척’은 현재의 어렴풋한 기운을 예민하게 감각하는 일이다. ‘분위기 파악’과 비슷하게 낌새를 알아차리는 건 연습이 필요하다. 같은 상황에서도 모두가 인기척을 느끼는 건 아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코앞에 나타나도 고개를 쳐들지 않는다. 그런 사람일수록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이 잦다.
발소리를 내면 ‘발기척’, 숨소리를 내면 ‘숨기척’, 문을 두드리거나 문밖에서 이름을 부르면 ‘문기척’을 낸다고 한다. 북녘에서 ‘노크’는 ‘손기척’이다. 남도에서는 문기척이 날 때 문밖으로 얼굴을 내비치는 걸 ‘비깜하다, 비끔하다’라 한다.
‘나, 여기 있소!’ 누구든 살아 있다는 건 말 그대로 ‘있는’ 것이지만, 때로는 ‘있음’ 자체를 알리는 신호가 필요할 때가 있다. 사람은 괴물과 천사가 한 몸뚱이에 엉켜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반가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모든 것과 단절되고 고립된 사람에게 인기척은 숙인 고개를 들게 하고 처진 다리에 힘을 넣어준다(정반대일 때도 있지만). 그럴 때 인기척은 신호의 차원을 넘어, 진정한 인간성을 추구하는 일이자 새로운 관계맺음을 향한 은유이다. 40년 전 새벽, 서슬 퍼런 어둠 속에서 인기척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을 거듭 기억한다. 나는 누구에게 인기척인가.
허하다
'허’를 길게 늘여 읽을수록 그나마 쓸쓸함 한 자락을 담는다. 둘도 없이 사랑하던, 자기다웠던, 가장 충실하고 행복했던 것에 대해 느끼는 감정. 모든 감정이 떠나가 버린 다음에 오는 감정의 감정. 의미 있던 게 한순간 의미 없어지면서 밀려오는 감정. 마음뿐 아니라 존재 전체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 땅이 꺼져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 애초에 그릇이 없었더라면 채울 것도 없고 ‘부재’의 흉터도 남지 않았을 텐데, 미련은 끝이 없다.
그러니 보기 좋은 대상에 눈이 팔려 마음을 표현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실하다’는 반대말이 될 수 없다. ‘허하다’는 자신의 마음 상태만 지목한다. ‘허한’ 마음을 경험한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죽음이든 결별이든 부질없음이든 허함은 쌓이고 쌓인다. 그 퇴적물이 사람을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지, 냉소적인 사람으로 만들지는 모른다.
이용수님, 윤미향님 두 사람 모두 허할 것이다. 같은 길을 걸어왔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음을 알 때 느낄 막막함을 상상하기 어렵다. 진정한 철학이 기존 철학을 반대하는 것에서 시작하듯, 모든 운동은 기존 운동을 비판하는 데에서 발전할 수 있다. 결점은 우리를 이루는 일부이다. 우리는 확신에 찬 사람들끼리 모인 돌무더기가 아니다. 인간의 삶이란 분명하지도 확고하게 정해져 있지도 않다. 다양한 목소리와 작은 다짐을 이어 붙인 조각보. 허하다고 실한 곳으로 튀는 게 아니라 그 허한 곳 한가운데, 텅 빈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허한 사람들이 새로운 길을 낸다. 그래도 허하긴 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