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년 전, 1990년에 있었던 일이다.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렸었다. 늘 그랬듯이 정치적으로는 이런저런 입씨름이 있었다. 분위기는 요즘 못지않게 부드러워져서 북측 기자들이 ‘비교적’ 자유로이 여기저기 취재도 하고 다녔었다. 그러나 미처 서울 사정에 익숙지 않아 답답해했었던 것 같다.
서울의 길거리를 지나던 어느 초등학교 학생한테 북측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걸었다. “월사금을 얼마나 내느냐”는 질문이었다. 문제는 그 초등학생이 월사금이라는 단어를 몰랐던 것 같다. 얼떨떨해서 대답을 못 하니까 “수업료, 학비 말이야” 하고 힌트를 주었건만 그 학생은 “그냥 학교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요”라는 대답밖에 하지 못했다. 매우 예리한 질문에 매우 정확한 답변을 했는데도 문답이 성립하지 않은 것이다.
꽤 일찍 공교육의 무상화를 이룩했던 북측은 취재 과정에서 북측의 체제 우월성을 드러낼 수 있는 중요한 테마로 ‘무상 교육’을 노렸던 것 같다. 그러나 사용한 어휘가 지나치게 구식 개념인 ‘월사금’이어서 남측 어린이와의 소통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사실 50년대만 하더라도 월사금 때문에 학교에 못 가는 아이들, 집으로 쫓겨온 아이들, 부모가 불려간 아이들 등의 일화가 꽤 많았다. 수업료니 학비니 하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익숙한 개념이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쪽 사회는 ‘교육 비용’의 문제가 녹록하지 않다. 차라리 ‘사교육비’가 얼마나 드냐고 물었다면 기대했던 대답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남과 북의 사회 체제와 제도의 차이까지 염두에 두고 이러한 ‘개념의 소통’까지 나누려면 아마도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일상어의 차이는 별로 심하지 않지만 사회적, 제도적 개념의 격차는 사실 엄청나게 심각하다. 하나하나 꾸준히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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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어
한국어의 한글맞춤법은 1933년에, 그리고 표준어는 1936년에 정해졌다. 그 후 약간의 변화를 겪으며 정착되어오다가, 분단 이후 북쪽에서는 서울말 중심의 표준어가 심하게 오염됐다고 비판하면서 1966년에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는 이른바 ‘문화어’를 제정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어의 서울말 중심의 변이는 표준어, 평양말 중심의 변이는 문화어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평양말을 기준으로 한다고 하는 바람에 오해도 생겨났다. 전통적인 평안도 방언처럼 ‘정거장’을 [덩거당]이라고 하는 식의 언어를 문화어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그것이다. 문화어는 과거 반공영화에 나오던 억센 억양의 ‘평안도 사투리’와는 크게 다르다. 북의 문화어는 20세기 중반 즈음에 중부방언하고 매우 비슷해진 상태의 평양말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남쪽의 표준어하고 큰 차이가 없고 어휘 및 억양의 차이가 약간 드러나는 정도이다.
또 정책적으로 어려운 한자어를 많이 줄이고 순화했기 때문에 비록 남쪽의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의미 파악에는 별문제가 없다. 큰 차이라고 한다면 ‘두음법칙’이라는 것 때문에 남쪽에서 ‘노인, 여성’이라고 하는 말을 ‘로인, 녀성’이라고 하는 정도이다. 그것 역시 알아듣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사실 남쪽에서도 외래어에는 말머리에 ‘로켓, 뉴스’처럼 ‘ㄹ’이나 ‘ㄴ’이 얼마든지 나타난다.
사전을 찾아보면 북의 문화어를 ‘북한어’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자칫 북한에서 사용하는 별개의 언어라는 식으로 해석되기 쉽다. 북한의 문화어는 한국어에서 벗어난 딴 언어가 아니라 북쪽 변이형을 참조해서 정리한 ‘규범 체계’일 뿐 별개의 언어가 아니다. 정확하게 사용한다면 북쪽에서 사용하는 말은 ‘북한어’라고 부르는 것보다 ‘문화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다.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